클립아트코리아 |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아펙(APEC) 경주선언에서 ‘인공지능(AI) 이니셔티브’가 발표되었다. 아주 요약하면 인공지능으로부터 받는 이득을 모두가 골고루 누리자는 다짐이다. 이득만 있을까? 당연히 위기도 있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걱정한다. 함께 발표된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는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인적 자원 개발의 현대화와 기술 기반 보건·돌봄 서비스 강화가 눈에 띈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와 돌봄 수요 증가를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방향성이 뚜렷하다. 한국의 인공지능 경쟁력은 그동안 국민에게서 수집한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 특히 매우 민감한 건강 관련 의료 정보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있다. 인공지능이 신약 개발 시간을 엄청나게 앞당길 것이라는 장밋빛 예측도 있다.
인간은 점점 덜 태어나고,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모양인데 정작 인간이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장강명 작가의 르포에세이 ‘먼저 온 미래’는 인공지능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가들은 “인간이 앞으로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듀나), “위대한 작품을 꼭 인간이 써야 하는가”(배명훈), “(로봇이든 무생물이든) 누군가 소설을 쓴다면 그냥 동료 작가”(구병모)라며 지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았다. 장강명은 이들과는 두가지 점에서 다른 의견을 낸다. 우선 덜 지적인 존재는 더 지적인 존재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이 같은 태도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사고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듀나, 배명훈, 구병모의 말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한 차원을 넘어 인간이 비인간을 지배해온 인간중심주의의 오만이라는 맥락에서 제국주의의 문제를 다루므로 핀트가 어긋난 비판이다.
하지만 두번째 비판은 설득력이 있었다. 장강명이 상상하는 인공지능 소설가가 야기할 가장 큰 문제는 충분히 위대한 소설을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소설을 ‘너무 많이 만들 때’이다. 위대한 소설이 하루에 288편씩 나오는데 그걸 다 읽을 수조차 없다면? 양적 변화가 축적되면 일정 시점에서 급격한 질적 도약이 이루어지는 양질 전환의 법칙에 따르면 소설은 더 이상 그 전과 같은 장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알파고 이후의 바둑이 그렇듯이 말이다. 의료는 어떨까? 신약 개발 기간이 당겨지고 웨어러블 워치에서 실시간 전송되는 정보를 통해 원격의료가 상용화되고 유전자 지도 차원에서부터 예방적 차원에서의 개입이 가능해지는 정도까지 인공지능 이후의 의료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번 아펙 선언에 들어간 기술 기반 보건·돌봄 서비스 강화는 정확하게 그 방향을 겨냥한다. 더 많은 정보에 입각한 더 많은 돌봄을 통해 인간은 아마 (그 서비스를 이용할 돈만 있다면)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인간은 왜 사는지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면 스스로 삶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률은 전년 대비 6.6% 늘었다. 하루 평균 40.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0대, 20대, 30대, 40대 모두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원인은 너무나 복합적이겠지만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실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인구감소지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36.3명으로 비인구감소지역 29.5명보다 높았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집중된 지역인 서울과 수도권은 자살률이 더 낮았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돌봄 제공자를 인간에서 기술로 바꾸면 인간을 더 오래 살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살고 싶게 할 수는 없다. 아마 자살률은 더 올라갈 것이다. 인간을 살고 싶게 하는 건 자기 자신일 수 있을 때,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을 때이다. 서로를 돌볼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도 도태될 거라는 위협을 받지 않을 때, 존엄을 지키면서 생존이 가능할 때, 타고난 것으로 너무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지 않을 때,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적 자원으로 취급되지 않을 때 그럴 때 우리는 삶이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계엄 이후 광장에서 나는 서로를 돌보고 구하는 민주주의를 목격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보다도 앞서가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불안들을 마주한다. 왜 매번 삶이 이렇게 전쟁 같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