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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이봐, 나도 어른이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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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이봐, 나도 어른이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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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8). 문학동네 제공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8). 문학동네 제공




연설문, 비평문 등을 모은 책 ‘진실의 언어’에서 살만 루슈디는 설문 조사에 응한다. 이를테면 “당신의 가장 유감스러운 기질은 무엇입니까?” “말이 많은 것”. ‘진실의 언어’에서도 살만 루슈디는 정말 말을 많이 한다. 제아무리 많이 말을 해도 “에일 맥주잔을 테이블에 꽝꽝 내리치며” 가장 격하게 주장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책과 이야기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책이나 이야기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우리를 어떻게든 변화시키며,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그리는 세상의 일부가 되고,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면서 세상사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방식의 일부가 된다고 주장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게 쉽지 않은 어른이 되면, 우리가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은 불과 몇 권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잘못된 판단을 많이 내리는 이유일 겁니다. (…)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책은 무엇인가? 한번 물어보세요. 그 대답이 지금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줄 것입니다.”



진실의 언어 l 살만 루슈디 지음, 유정완 옮김, 문학동네(2025)

진실의 언어 l 살만 루슈디 지음, 유정완 옮김, 문학동네(2025)


살만 루슈디의 말은 정말일까? 이야기가 정말 그렇게 힘이 셀까? 나 자신은 이야기의 막강한 힘을 느끼며 산다. 나는 좋은 이야기가 있어야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물 같은 어떤 사람이 있어야만 세상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들어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가치가 내 삶의 가치라고 믿는다. 나는 사람들의 성장과 변화도 이야기의 관점으로 본다. 사람의 일생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뭔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어쨌든 이야기의 은밀한 힘에 대해서 떠오르는 수많은 일화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살만 루슈디의 자전적 책 ‘조지프 앤턴’이랑 관련이 있다. 1988년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가 출간된 후,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슈디에게 ‘죽음’을 선고한 파트와(이슬람 율법 권위자의 해석이나 지침)를 내렸다. 이 때문에 루슈디는 13년이나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 살아야 했다(숨어 살 때의 가명이 조지프 앤턴이었다). 이 살해 명령은 루슈디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번역자가 살해당했고 이탈리아 번역자가 칼에 찔렸다. 노르웨이 출판인 빌리암은 총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



정혜윤 CBS 피디

정혜윤 CBS 피디

그 소식을 들은 루슈디는 너무너무 미안해서 심한 자책감 속에 입원한 빌리암에게 전화를 했고 거듭 사과를 했다. 빌리암은 그때 뭐라고 말했을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이봐, 나도 어른이야!” 이 장면을 읽을 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이야기는 내 가슴 속에서 살아남았다. 짜증나고 지쳐서 생색 좀 내고 싶을 때, ‘너 때문에’라고 남 탓하고 싶을 때, ‘괜히 한다고 했어!’ 후회가 될 때, 누군가 나에게 미안해할 때, “이봐, 나도 어른이야!”라는 이야기가 슬며시 떠오른다. 언젠가 한번은 맥주잔을 테이블에 쾅쾅 내려치며 “이봐, 나도 어른이야”가 얼마나 멋진지 주장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는 휴대폰에 내 이름을 ‘이봐, 나도 어른이야’로 저장했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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