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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 26만장, 李정권 도둑질'…나경원 비판이 신경 쓰이는 이유 [팩트, 첵첵첵]

파이낸셜뉴스 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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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 26만장, 李정권 도둑질'…나경원 비판이 신경 쓰이는 이유 [팩트, 첵첵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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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비판하며 "후속 대책 마련 중요…가장 급한 게 전력"
IEEE "2030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 945TWh…AI 가속 서버 탓"
한국, 안정된 전력망에도 지역별 전력 수용 차이에 송·배전 병목
하정우 수석 "원전 포함 믹스 에너지…신재생에너지 비율 높여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장소인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장소인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한국은 인공지능(AI)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글로벌 AI칩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찾아 “GPU(그래픽처리장치) 26만대를 우선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다.

최근 이 같은 분위기에 제동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은 타국에 안 주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젠슨 황 CEO의 약속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닌가 우려도 있지만, 차분히 준비할 건 준비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GPU 물량을 ‘획기적으로 확보’한 소식과 함께 “이를 제대로 활용할 만한 환경이 한국에 마련돼 있느냐”는 냉정한 질문이 따라붙으면서다.

놀랍게도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다. 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공론화시켰다.

나경원 의원의 '그 지적'

나 의원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GPU(확보)는 기업과 민간이 한 일이지 정부·여당이 자기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도둑질”이라며 이재명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뒤 “하드웨어 확보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이후 후속 대책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도야 어찌됐건,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인 후속 조치를 강조한 셈이다.

나 의원이 말한 후속 대책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다. 전력 인프라 확보와 함께 데이터센터 설계·냉각체계 고도화, AI 인력양성과 연구개발 투자, 산업규제 개선 및 노동시장 유연화다.

그 중에서도 첫 손에 꼽은 게 '전력'이다.


나 의원은 “GPU 1개당 소비전력을 약 1.4kW 전후로 추산해 26만대를 단순 곱하면 약 400MW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일 원자로 한 기(중형 원전)가 반년에서 1년 내내 생산하는 전력을 모두 소모할 정도라고도 했다.

중소도시 맞먹는 데이터센터 소비 전력

글로벌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 현황. /출처=IEA

글로벌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 현황. /출처=IEA


나 의원의 불편한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AI 초거대 언어모델(LLM)과 챗GPT,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가 대규모 GPU 연산을 하게 되면서 전력 소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해외에선 이 같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4월 공개한 보고서 'AI로 인한 에너지 수요'를 보면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945테라와트시(TWh)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 샌프란시스코의 에포크(Epoch) AI 연구소도 이 시기 AI 모델을 훈련하고 실행하기 위해 거대한 슈퍼컴퓨터가 계속 작동하려면 2030년까지 원자로 9개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 스펙트럼은 "AI 모델을 한 번 학습할 때 테슬라 100대가 1년 동안 달리는 전력량과 맞먹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GPU는 그래픽 연산용으로 설계돼 병렬처리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력 효율성은 중앙처리장치(CPU)보다 낮다는 한계가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AI 전용인 A100, H1000의 경우 한 장 당 소비전력이 700~800W에 달한다.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수만 장이 탑재된다면 중소 도시 하나의 전력 소비와 맞먹는 수백MW의 전력이 소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의 전력, 괜찮은가

우리나라도 데이터센터 및 AI 관련 인프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전력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다.

비교적 안정된 전력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에도 끊임없이 '걱정'을 하는 데는 지역별 수용 능력 편차와 부족한 송·배전망에 있다.

가령 데이터센터가 특정 지역에 밀집하게 되면 해당 지역의 송전선로나 변압기 등이 부담을 받을 것으로 봤다. 여기에 대규모 부하가 추가되면 예비력 확보나 전력망 안정성까지 위험해진다는 진단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입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송배전망 여유, 변압기 용량, 냉각 설비 동시 확보 여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한국에너지공과대 황지현 에너지공학부 교수는 "경기도 용인에 조성되는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도 '전기 먹는 하마'라 불릴 정도로 전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인데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GPU 26만대를 가져오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금부터라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GPU를 대량 확보할 경우 데이터센터 설비는 수도권 등 전력망 혼잡지역보다는 송전망 여유가 있는 지방이나 산업단지 중심으로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설계 단계부터 고밀도 랙, 수랭·액침 냉각 등 AI 전용 인프라를 준비하는 동시에 데이터센터 자체를 전력망의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연산 작업은 전력 피크 시간을 피하도록 조정하거나 재생에너지 잉여전력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李정부 "탈원전 불가" 단언... 세밀한 준비 필요할 때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 수석(왼쪽)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시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갈라만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 수석(왼쪽)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시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갈라만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행히 이재명 정부는 전력망 공급을 위한 고민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하정우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은 JTBC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자리에서 전력과 관련한 준비 상황을 전했다.

'미국에서 핵 발전소 하나를 데이터센터 안에 짓는다는 소리가 있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하 수석은 소형모듈원전(SMR)을 거론한 뒤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믹스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잘못 알려져 있는 게 '탈원전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탈원전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뒤 "원전은 일정 비율 유지하며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비율은 10%도 안 된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전력 소모 패턴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 구축이다.

하 수석은 "전력의 최대치가 확 올라갈 수도 있다. 한꺼번에 GPU 10만장 이런 것들이 돌아가면 전력 소모도 급상승한다"면서 "전력 소모 패턴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력, 배전 같은 시스템에 재생에너지도 포함해야 한다.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거 자체가 산업이 된다"면서 "소위 말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넣고 전력을 컨트롤하는 소프트웨어에 한국의 우수한 전기, 송전, 배전 역량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계도를 그리듯 전력망을 세밀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원전과 SMR, LNG발전, 재생에너지를 지역과 상황에 맞게 배치해 효과적인 전력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과 안전, 효율성 측면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의 역할에 주목하기도 했다. LNG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복합화력 방식으로 석탄·석유 대비 탄소배출이 낮아 친환경 발전으로 평가된다.

황 교수는 "원전은 1kw/h당 50~100원, LNG는 150~200원이다. LNG가 비싸 보이지만, 원전 폐기비용 등을 고려하면 유리한 게 더 많다"며 "또 사람이 밀집된 수도권 지역은 SMR에 대한 거부감이 커 LNG가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재생에너지는 날씨 등 변수가 많아 안정적인 전력원이 되지 못한다. ESS가 있다고는 하지만, 배터리 비용이 재생에너지보다 비싸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라며 "이런 걸 고려해 세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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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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