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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 기술패권 시대, 명품특허가 국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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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 기술패권 시대, 명품특허가 국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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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욱 아이피코드 대표 (前 한국표준협회 산업표준원장)

박병욱 아이피코드 대표 (前 한국표준협회 산업표준원장)

최근 특허청이 국무총리 소속 '지식재산처'로 승격됐다. 이는 지식재산(IP)이 더 이상 산업의 부속 개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질적 변화다. 정부가 기술 혁신과 창의적 연구개발(R&D)을 촉진하려면, 그 출발점은 특허제도의 근본 강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특허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다. 혁신을 보상하고 모방을 방지하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세우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특허 보호 수준은 아직 그 중요성에 걸맞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권리자의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면,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겠는가. 남의 기술을 베끼는 것이 더 유리한 사회에서는 혁신이 멈추고, 결국 국가 경쟁력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오랜 기간 특허 친화적(Pro-patent) 정책을 유지하며 구글, 애플, 테슬라 같은 빅테크 기업이 성장할 토대를 만들었다. 지식재산은 곧 국가의 경쟁력이며, 기업에는 생존의 열쇠임을 입증한 셈이다.

특허는 등록 이후에도 언제든지 무효심판을 통해 도전을 받을 수 있다. 무효로 확정되면 권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권리자에게는 큰 리스크다.

한 국내 배터리 기업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기업이 보유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특허는 대용량·고출력 배터리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원천기술이었다. 이 특허는 전극 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고, 열적·기계적 안전성을 높여 대용량 리튬이온전지의 상용화를 가능하게 한 기술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국내 소송 과정에서 무효를 면하기 위해 특허가 매우 협소한 권리범위로 좁혀지면서 사실상 활용이 제한되는 아쉬운 결과를 맞았다.

흥미로운 점은 해외의 평가는 달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무효 판단 이후 유럽과 일본에서는 더 넓은 권리범위의 특허로 등록됐다. 그 결과 이 특허는 10여년 전 일본과 중국 기업에 라이선스를 제공하며 막대한 로열티 수익을 거뒀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중국 배터리 업체를 상대로 승소하며 올 연말 특허권 존속기간 만료를 앞두고도 여전히 그 가치를 입증하기도 했다. 산업 현장에서 끝까지 제 역할을 다한 진정한 '명품특허'라 할 만하다.


국가별 특허 무효율의 차이는 곧 혁신 생태계의 차이를 의미한다. 미국은 한때 높은 무효율로 비판받았으나, 특허심판원(PTAB) 제도 개선과 함께 무효율을 대폭 낮췄다. 현재 의회에 계류 중인 '특허적격성복원법(PER Act)'과 '혁신리더십존중법(PREVAIL Act)'은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공고히 하려는 조치다. 일본 역시 2010년대 초 50~60%에 달하던 무효율을 최근 11% 수준으로 줄였다. 특허심판원과 법원이 특허권 보호 중심으로 그 기준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특허권 보호가 곧 산업 발전의 토대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지금, 기업의 노력만으로 특허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식재산처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심사 기준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한국에서 등록된 명품특허가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법원 또한 분쟁을 다룰 때 친특허주의 시각으로 권리자의 기술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데 힘써야 한다.

지식재산처가 단순한 행정조직의 승격에 그치지 않고, 기술 탈취 근절·특허 분쟁 대응·국제 협력 강화 등 IP 전 주기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 기업들은 보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혁신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명품특허'를 선점하고 보호하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혁신의 씨앗은 제도에서 시작되며, 특허를 존중하는 사회가 곧 미래 산업의 토대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병욱 아이피코드 대표·前 한국표준협회 산업표준원장 bwparki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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