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정권 부통령
미국 공화당 ‘네오콘(신보수)’의 상징이자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딕 체니(Dick Cheney·84) 전 부통령이 4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유족은 성명에서 “체니 전 부통령이 폐렴 및 심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용기와 명예, 사랑과 친절, 그리고 플라이 낚시를 즐기는 삶을 가르쳤다. 우리는 그에게 사랑받았던 축복을 평생 간직할 것”이라고 전했다.
체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제46대 부통령(2001~2009)으로 재임하며 네오콘으로 불리는 신보수주의자들의 맏형으로서 ‘선제 공격’과 ‘정권 교체’를 핵심으로 하는 강경 보수 노선을 주도했다.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도 실질적으로 그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부시 행정부의 핵심 설계자로 불렸고, 막강한 영향력으로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불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체니는 부통령직을 실질적인 권력 기관으로 재정의했다”고 평가했다.
2000년대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었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이 4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 딕 체니(왼쪽)와 대통령 후보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함께 유세 무대에 오른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
유족은 성명에서 “체니 전 부통령이 폐렴 및 심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용기와 명예, 사랑과 친절, 그리고 플라이 낚시를 즐기는 삶을 가르쳤다. 우리는 그에게 사랑받았던 축복을 평생 간직할 것”이라고 전했다.
체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제46대 부통령(2001~2009)으로 재임하며 네오콘으로 불리는 신보수주의자들의 맏형으로서 ‘선제 공격’과 ‘정권 교체’를 핵심으로 하는 강경 보수 노선을 주도했다.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도 실질적으로 그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부시 행정부의 핵심 설계자로 불렸고, 막강한 영향력으로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불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체니는 부통령직을 실질적인 권력 기관으로 재정의했다”고 평가했다.
1989년 3월 14일 미 국방장관 지명자 딕 체니가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
체니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2000년대 초반 워싱턴 정가에는 ‘체니 대통령’ ‘부시가 선의를 뿌리는 동안 체니는 두려움을 심는다’ 같은 농담이 돌았다. 2001년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2005년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 2001~2006년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 등이 체니가 부시 행정부에서 발탁한 대표 인사로 꼽힌다. 평생 심장 질환과 싸웠던 체니는 다섯 차례 심장마비를 겪으면서도 정계와 기업계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그는 “이후의 삶은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체니는 1941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나 와이오밍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28세에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34세에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군에 복무한 경력은 없지만,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집권기인 1989년 국방장관에 임명돼 파나마 침공과 걸프전을 지휘했다. 이후 에너지 기업 핼리버턴 CEO를 거쳐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됐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했던 리처드 체니의 모습. '딕 체니'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렸다. /로이터 연합뉴스 |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도 체니는 공화당 내 대표적 보수 인사로 남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당내 고립을 자초했다. 2022년 첫째 딸 리즈 체니 전 하원 의원의 반(反)트럼프 선거운동 광고에 직접 출연해 “트럼프는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된 비겁자”라고 직격했다. 트럼프의 대선 패배에 불복한 극렬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연방 의사당에 난입했던 ‘1·6 사태’ 1주년 행사에서 “공화당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정당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당파를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첫사랑인 린과 결혼해 2녀를 뒀다. 둘째 딸 메리가 동성애자라고 밝힌 이후 공화당 강령과 달리 동성 결혼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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