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의 4일 예산안 시정연설을 관통하는 말은 ‘에이아이’(AI·인공지능)였다. 그는 에이아이가 세계 질서의 대전환을 만들어낸 배경이자 위기 극복의 열쇠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점은 연설의 제목부터 ‘인공지능 시대를 여는 첫 예산안’이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20여분에 걸친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에이아이를 28차례나 언급했다. 임기 중에 추진하려는 ‘인공지능 고속도로’를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의 ‘산업화 고속도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정보화 고속도로’에 견주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는 급진적인 대전환의 시기에 경쟁 대열의 선두로 치고 나가지 못한다면 레이스에서 줄곧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우리는 지금 겪어보지도 못한 국제 무역 통상질서의 재편과 인공지능 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국가 생존을 모색해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변화를 읽지 못하고 남의 뒤만 따라가면 끝없이 도태될 것이지만 변화를 선도하며 반 발짝 앞서가면 무한한 기회를 누릴 수가 있다”는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를 겨냥해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한 것도 모자라 알앤디(R&D·연구개발) 예산까지 대폭 삭감하며 과거로 퇴행했다”는 뼈 있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알앤디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3천억원으로 19.3% 확대 편성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각 분야에 배정된 에이아이 예산의 내역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에이아이 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 산업·생활·공공 등의 분야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데 배정된 10조1천억원, 로봇·자동차·조선·가전·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인공지능 대전환을 위해 향후 5년간 투입하기로 한 6조원 등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5천장을 추가 구매해 애초 목표치인 3만5천장을 조기 확보한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앞서 정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 기간 중 국내 기업 네곳에 26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를 공급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엔비디아와 체결한 바 있다.
지난달 26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부터 지난 1일 폐막한 아펙 정상회의까지, 숨 가쁘게 내달려온 다자·양자외교의 성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일주일간의 ‘슈퍼위크’를 통해 “대한민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교류와 번영, 역내 평화 증진을 위한 역할을 주도할 수 있었다”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넣으며 총력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아펙 주간에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완화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의제로 올려 미국의 승인을 얻어낸 핵추진 잠수함 보유와 관련해서도 “자주국방의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다지고,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획기적 계기 마련으로 미래 에너지 안보도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회담에서 70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과 초국가 스캠 범죄에 대한 공조 등 7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실도 강조했다.
자주국방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점도 확실히 했다. “북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4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사용하고, 세계 5위의 군사력으로 평가받는 우리 대한민국이 국방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 문제 아니겠나”라고 한 대목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인 ‘임기 중 전시작전통제권 회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정식화한 ‘ 엔드(END, 교류협력·관계정상화·비핵화) 이니셔티브’를 통해 “평화·공존·공동성장”이란 목표를 관철해나가겠다는 뜻도 재확인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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