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0월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에서 성남시 쪽 실무책임자와 민간사업자들의 배임죄를 인정해 전원 실형과 함께 법정구속한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이 대통령이 김만배 지분 일부를 받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을 알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명시했다. 검찰은 민간사업자들이 당시 성남시장으로 대장동 개발의 최종 결재권자인 이 대통령과 범행을 공모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는데, 여기에는 이 대통령과 민간사업자들 사이에 대장동 수익 배분에 대한 모종의 약속이 있었다는 의심이 깔려있었다. 재판부는 검찰의 이런 의혹에 선을 그으면서도, 별도로 기소된 이 대통령의 배임죄 성립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조형우)가 대장동 사건에 연루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성남시 쪽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공사 전략사업실 투자사업팀장이었던 정민용 변호사,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천화동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에게 징역 4∼8년을 선고한 1심 판결문 분량은 총 740쪽에 달한다.
4일 한겨레가 확인한 이 판결문에는 이 대통령 이름이 모두 390차례 등장한다. 재판부는 판결문 앞부분에 이 대통령과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당시 성남시 정책실장)이 민간사업자들의 배임 범행에 공모·가담했는지는 기재하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못 박았다. 재판부는 유죄 선고 이유 첫 장에 각주를 달아 “이재명·정진상에 대한 배임 사건 재판은 별도로 진행 중이고, 이재명은 이 법정에 출석해 증언한 사실이 없고, 정진상은 이 법정에 출석했으나 일관하여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며 “이재명·정진상 의 가담 여부에 관한 실체 파악에 일부 제한이 있는 점,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다뤄진 주요 증거들에 관한 이재명·정진상 쪽의 반대신문이나 탄핵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형사책임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이재명·정진상이 피고인들의 배임 범행에 공모·가담했는지에 관한 설시를 기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이 김만배씨가 대주주인 화천대유를 대장동 개발 사업자로 내정하는 대가로 사업수익 일부를 받기로 민간사업자들과 약속했다는 부분과 관련해 “정진상이 이재명에게 ‘김만배의 지분 중 일부를 받기로 했다’는 등의 내용을 전달했는지는 유동규의 진술로는 입증되지 않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며 “유동규의 진술과 같이 나중에 이재명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지분을 받기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이재명이 이를 약속받은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김만배씨와 유 전 본부장이 이른바 ‘대장동 이익 428억원 약정 약속’을 한 혐의에 대해 검찰은 최종적으로 이 돈이 이 대통령 정치자금으로 흘러가기로 됐다고 의심했지만, 재판부는 그런 내용을 이 대통령이 알았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 전 실장이 민간사업자들에게 대장동 사업 혜택을 주는 대가로 각종 접대를 받았다고 구체적으로 판결문에 적시해 정 전 실장의 공모 가능성은 크게 열어놨다. 재판부는 “성남시 정책실장 정진상은 이재명의 최측근으로서, 성남시 공무원들은 정진상의 말을 곧 이재명의 말이라고 여길 정도로 둘 사이가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남욱 등 민간사업자들 또한 정진상이 이재명의 측근으로 성남시의 유력인사라는 점을 충분히 알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대장동 개발사업이 수월하게 진행되게끔 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정진상에게 접대하는 등 유착관계를 형성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김만배, 남욱 등 민간사업자들은 자신들이 대장동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성남시 수뇌부의 확실한 보장이 필요했고, 이에 2014년 6월28일 김만배과 유동규, 정진상, 김용이 이른바 ‘의형제 모임’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 모임에서 김만배씨가 정 전 실장 등에게 “대장동 개발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탁했고, 정 전 실장 등이 이를 수락하면서 김만배씨가 정 전 실장 등에게 이 대통령 정치자금 조달을 약속했다는 사실도 재판부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한 유 전 본부장의 뇌물죄와 관련해 정 전 실장과의 공모관계도 판결문에 담았다. 재판부는 “유동규는 정진상과 공모해 김만배 등으로부터 (대장동 개발 관련) 청탁을 받고 부정한 행위를 한 후 뇌물을 수수하기로 김만배와 약속했다”고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이 2018년 3월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퇴사한 이후에도 김만배씨로부터 대장동 사업 경과를 확인하고 이를 정 전 실장에게 보고했으며, 정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아 김만배씨에게 돈을 요구한 내용도 판결문에 포함됐다.
재판부는 대장동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이 공사보다 민간사업자에게 비정상적으로 많이 돌아가도록 공모지침서·협약서를 만든 과정에 대해 ‘민간사업자들로부터 대장동 수익을 약속받은 유 전 본부장이 주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대통령에 대해선 “이재명은 유동규, 정진상 등으로부터 김만배, 남욱 등 민간사업자들이 공사 설립이나 성남시장 재선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사실은 보고받아 알았을 것으로 보이나, 민간사업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금품이나 접대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재명이 직접 민간사업자들을 사업시행자로 내정했거나, 이를 지시했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유동규가 이 사건 공모지침서나 사업협약에 반영된 주요 결정을 모두 독단적으로 지시했다고 볼 수는 없고, 오히려 유동규는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사업자들 사이에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조율하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주로 담당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 이 대통령과 정 전 실장의 책임 여지도 동시에 열어놨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한 추징금 산정 근거를 설명하면서 이 대통령 재판이 중단된 상황 등을 언급하며 대장동 개발 비리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 회복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현 재 피해자인 공사의 재산반환청구권 또는 손해배상청구권 행사 등 피해 회복 조치는 심히 곤란한 상태로 보이는바, 대장동 개발사업 진행과정에서 있었던 업무상 배임 관련 이재명, 정진상에 대한 형사재판은 이 법원에서 계속 진행 중이고, 그마저도 이재명에 대한 재판은 절차 진행이 중단된 상태이므로, 공사가 대장동 관련 형사소송 결과가 모두 나온 뒤에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 범죄피해 재산을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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