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
“달러스테이블코인은 달러가 아니다.”
가히 스테이블코인 열풍이 불고있다. 시티은행에 따르면 현재 약 3000억달러 규모의 시장규모가 2030년에는 약 4조달러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달러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지급결제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면서 각국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규모 전망 |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라는 단어를 놓고 신현송 BIS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달콤쌉싸름한' 같은 형용 모순(Oxymoron) 표현이라지만 필자는 안정적(stable)이지 않을 것을 안정적이라고 붙여 놓았기 때문에 잘못된 명명(Misnomer)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현실에서 가치가 심하게 흔들리는 달러와 일대일로 교환되고 심지어 가치 보장도 역시 가치가 흔들리는 미국채에 의존하고 있는데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러스테이블코인을 잘 들여다보면 많은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먼저 스테이블 코인은 우리에게 '돈'이라는 개념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돈은 본질적인 정의가 없는 단어다. 따라서 거래의 수단, 계산의 척도, 가치저장 수단으로 쓰이면 돈이라는 기능적인 정의만 존재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담보로서의 수단'을 넣기도 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출현은 우리가 이해하는 돈의 형태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돈은 돈스러움, 즉 화폐성(Moneyness)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화폐의 형태(물건→귀금속→현금 → 디지털화폐)는 변해왔지만 돈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유동성과 신뢰의 매개'라는 기능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동안의 조개껍데기에서 시작된 '화폐의 진화'는 형태의 진화이지, 기능의 소멸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돈스러움(moneyness)은 '돈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얼마나 돈처럼 기능하는가'라는 연속적(spectrum) 개념이란 사실이다. 즉, 특정물건이 얼마나 '거래 수단' 등 돈의 기능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돈스러움의 차이가 있을순 있지만 돈이냐 아니냐라는 주장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할때 수년 전 비트코인을 놓고 벌인 돈이나 아니냐라는 논쟁은 우리가 비트코인은 차치하고 그전에 돈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 기인했다고 보인다.
이러한 화폐성을 기준으로 하면 “달러스테이블코인은 달러가 아니다.” 즉, 양자의 돈스러움은 일치하지 않는다.
달러가 돈의 기능을 수행해서 돈처럼 받아들여지는 달러의 화폐성은 달러가 가진 신뢰(안전자산성), 유동성(쉽게·빨리 결제/환매), 싱글니스(Singleness:언제 어디서나 같은 액면으로 통용), 담보력(레포/마진에 쓰임)으로부터 나오고 이는 법정통화 지위, 중앙은행 결제네트워크, 연준 준비금 계정, 유동성이 풍부한 미국 국채 등 많은 인프라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
달러스테이블코인의 화폐성은 이러한 달러가 가진 화폐성의 분산으로부터 나온다. 먼저 달러스테이블코인의 신뢰는 중앙은행이 아닌 미국채등 가치를 담보하는 준비금으로부터 나온다. 다시 말하면 달러스테이블코인은 미국채가 가진 담보력이 토큰화된 형태로 '토큰화된 미 국채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앙은행 준비금 기반의 예금통화가 아니라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를 담보자산으로 한 통화인 점에서 달러와 차이점이 존재한다. '달러=미국 정부의 신용'이지만, '달러스테이블코인=민간 발행자의 담보 관리 능력+블록체인 네트워크의 보안성'이라 할 수 있고 신뢰의 주체가 국가에서 민간으로 이동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유동성 측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Fed Wire, SWIFT 등 기존 결제망이 아닌 연준 계좌 체계 밖의 블록체인망을 타고 거래되면서 글로벌 24시간 P2P 결제가 가능하다. 즉 달러 화폐성이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달러의 화폐성을 높이는 싱글리스야 말로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큰 약점이다. 이미 USDC등 달러스테이블코인이 금융시장위기때 액면 일대일 교환이 깨지는 이른바 디페그(depeg) 현상이 일어났듯이 국채, MMF등 고품질유동자산(HQLA) 기반 만으로는 싱글니스가 깨질 위험이 상존한다. 기술적으로도 유통되는 블록체인이 다른 이유로 인해 싱글리스가 깨지는 이른바 '울타리 정원(walled garden)' 문제도 존재한다. 이러한 양자의 차이점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디지털 버전'이 아니다. 즉 '달러'가 아닌 것이다.
달러스테이블코인이 달러가 아니라는 것은 달러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달러스테이블코인을 달러로 만들기 위해 달러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하는 시도가 바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에 마스터계좌(master account)를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마스터계좌란 연준에 직접 준비금 등 자금을 예치하고 지급결제를 처리할 수 있는 은행들이 가진 계좌를 말한다. 만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연준의 마스터 계좌를 가진다면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보장하기위해 법상 상시 가져야 하는 준비금을 마스터계좌에 예치하고 여기서 생기는 이자수익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발행사가 은행을 경유하지 않고 T+0 결제, 즉 실시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러스테이블코인의 약점인 싱글리스의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다양한 통화정책상의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하고 있는 연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달러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공공독점이 깨지면서 발생한 달러 화폐성의 확산이라면 세간의 '달러스테이블코인=달러패권 강화'라는 논의는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일부에서는 달러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준비금으로 막대한 양의 미국 단기 국채(T-bills)를 사들이면서 수요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채의 새로운 수요원을 창출하는 것과 아르헨티나 등 고인플레이션 국가에서 달러스테이블코인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듯이 미국 금융시스템 밖에서도 '달러 단위의 경제활동'이 늘어 나는 것을 달러패권의 강화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자금이동은 다른 부분의 자금 감소와 미국채 매입감소가 있기 때문에 순증효과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분석해야 알 수 있다. 후자의 달러 사용확대는 신흥국의 경제 불안이 달러화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위험, 이른바 '테일리스크(tail risk)' 때문에 달러패권의 강화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달러패권을 달러의 무기화로 이해한다면 달러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달러패권의 강화가 아닌 약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왜냐하면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결제 기반이므로 화폐의 기능이 스마트계약으로 내장되어 '거래+결제+담보'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프로그래머블(Programmable) 화폐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 기존 SWIFT를 앞세운 미국의 제재력은 무력화 될 위험이 있다. 또 테더(USDT)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고는 있지만 그 운영 주체는 미국 정부나 연준이 아니라 민간·해외 사업자이기 때문에 '연준의 달러'가 아닌 '블록체인의 달러'일 뿐이며 '달러의 이름을 가진 비(非)달러'가 공공영역 밖에서 재생산된 것이다.
따라서 비록 달러를 단위로 쓰고 있지만 거래의 신뢰 기반은 더 이상 미국 정부에만 있지 않으며 향후 미국도 자신의 전유물 이었던 달러가 유통되는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통화 플랫폼을 놓고 주도권 경쟁을 해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와같이 달러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많은 생각할점이 우리가 도입하려는 원화스테이블코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원화스테이블코인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원화스테이블코인이 달러스테이블코인보다 더 싱글리스가 깨질 위험이 크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고 반대로 한국과 같이 지급결제가 잘되어 있는 나라가 왜 필요한가라는 주장 역시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지급결제 혁신성을 간과한 입장이라 경계해야한다.
도입환경의 차이점도 살펴야 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는 미국과 달리 비교적 엄격한 외국환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은행, 기재부, 금융위 등 관계기관들이 모여 원화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이 미칠 영향을 잘 살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도입과 관련 어느기관은 찬성이고 어느기관은 반대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고 향후 원화스테이블코인 도입법과 외국환거래법 개정이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세기관의 출중한 실력이 한데 모일 것으로 기대한다.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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