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15일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작곡가 박태현 동요 모티브로 만든 아리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소녀와 인형 이야기
작곡가 박태현 동요 모티브로 만든 아리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소녀와 인형 이야기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주연을 맡은 소프라노 홍혜란과 테너 최원휘 부부. [성남문화재단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동요 ‘산바람 강바람’)
남녀노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누구라도 흥얼거릴 수 있는 동요 ‘산바람 강바람’이 오페라가 됐다. 작곡가 박태현(1907∼1993)이 남긴 유산을 모티프로 만든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다.
윤정국 성남문화재단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동요의 서정성과 오페라의 예술성이 만나는 새로운 시도이자 모든 감성을 아우르는 무대”라고 말했다.
‘바람의 노래’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산골 마을의 빈집에 사는 소녀 강바람과 인형 ‘달’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의 이야기가 박태현의 대표곡을 모티프로 해 살아났다. 대본은 오페라 ‘사막 속의 흰개미’, ‘레테’를 쓰고, 배우 한혜진·박하선·유이가 출연해 인기를 끈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각색한 극작가 황정은이 작업했다.
이야기의 배경을 한국전쟁으로 삼은 것에 대해 황 작가는 “동요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경제 상황이 좋았던 때가 아니라 전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왜 가장 암울할 때, 어른들의 싸움이 있을 때 동요가 가장 성행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 작품의 시초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암울한 시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주는 한 줄기 빛에 대한 소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며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시대를 살아낸 박태현의 동요는 어린이들의 동심을 지키고 구원한 노래였다”고 말했다.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제작발표회 [성남문화재단 제공] |
박태현의 곡을 오페라로 매만진 김주원 작곡가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 역사상 최초로 녹음된 한국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쓴 주인공이다 그는 오페라를 위해 17개의 곡을 만들었다. 이 중 박태현의 동요는 6곡이 사용됐다. ‘산바람 강바람’을 비롯해 ‘깊은 밤에’, ‘엄마’, ‘다 같이 노래 부르자’, ‘자장노래’, ‘누가누가 잠자나’ 등이다. 성남문화재단에 따르면 한 곡에 2개의 동요가 혼합되기도 하고, 리프라이즈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리아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배경음악으로 동요의 선율이 사용되기도 한다.
김 작곡가는 “최대한 동요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되 나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화성이나 박자를 바꿔 리듬감 있게 만들거나 편성을 조금 다르게 했다”며 “너무 많이 바꾸면 박태현 선생님의 색깔이 사라지기에 기존 동요의 매력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선율이 등장하기에 남녀노소 모두 쉽게 즐길 수 있는 오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오페라에선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소녀 강바람이 엄마가 만들어준 지푸라기 인형 ‘달’과 엄마가 가르쳐준 동요를 부르며 고된 날들을 버틴다. 이름에도 나름의 의미를 담았다. 황 작가는 “동요의 가사에도 나오지만, 세상 모든 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유일한 존재는 바람이라고 생각해 주인공의 이름을 강바람이라고 지었다”며 “어떤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주연을 맡은 소프라노 홍혜란과 테너 최원휘 부부. [성남문화재단 제공] |
오페라의 두 주인공은 2011년 동양인 최초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홍혜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를 비롯해 유럽 무대를 아우르는 테너 최원휘 부부가 맡았다.
홍혜란은 “강바람은 전쟁의 상흔과 폐허 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아이”라며 “한국전쟁은 어떻게 보면 먼 이야기 같지만 그 영향력이 우리 세대에도 이어져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라고 했다. 최원휘는 이 작품을 통해 테너 인생 최초로 인형을 연기한다. 그는 “사람이 아닌 인형 역할을 맡아 노래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리 시대를 품어준 동요의 멜로디 위에 우리 문화와 말로 쓴 창작 오페라가 나온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오페라가 박태현의 동요를 모티브로 한 것은 성남문화재단에서 지역 문화예술 자원을 활용한 작품을 구상하면서다. 200여곡의 동요를 남긴 박태현은 1980년대 성남에 정착한 뒤 1993년 11월 타계할 때까지 성남 지역 문화예술인과 깊이 교류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이완용 저격 사건에 가담했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박태은의 동생으로 항일 정신을 담은 한글날 노래와 삼일절 노래도 작곡했다.
성남문화재단은 초연을 마친 뒤 작품을 보완, 내년부턴 대극장 오페라하우스에서 올릴 수 있는 재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윤정국 대표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는 갈등과 대립이 격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어른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너 최원휘는 “갈등과 반목의 어려운 시대에 이 오페라가 깊은 갈등을 풀어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지 큰 기대를 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공연은 오는 14~15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