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첫 정상회담에서 우려와 달리 무난한 출발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일 정상이 서로 필요성에 공감하며 각각 ‘실용노선’과 ‘현실노선’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31일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30일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첫 회담을 했다”며 “엄혹해진 안보 환경을 감안해 한·미·일 협력을 유지하는 한편 ‘실용 외교’를 내세운 이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중요시해 양국 의도가 일치된 모습”이라고 전했다. 하루 전 이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다카이치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일 양국이 그 어느 때보다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고, 다카이치 총리는 “지금의 전략 환경 아래 일-한 관계, 일-한 간 공조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0일 아펙 정상회의장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특히 이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께서는 제 꿈을 모두 이룬 분”이라며 “드럼, 스쿠버다이빙, 오토바이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해 만남 분위기를 돋웠다. 다카이치 총리는 대학 시절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여걸’이었다는 사실을 추어올리며 친근감을 표시한 것이다. 또 “(다카이치 총리의 말이) 제가 평소에 하던 말과 똑같다는 말씀을 드린다. 놀랍게도 글자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이날 정상회담 뒤 일본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이 매우 따뜻하게 환대를 해줘 매우 즐겁게 의견을 나눴다”며 “이 대통령과 (대화에서) 이웃 국가로서 입장이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리더십을 통해 이를 제대로 관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날 두 정상은 향후 정상 간 셔틀외교를 지속하기 위해, 다음 만남은 이 대통령이 일본의 지방도시로 답방을 하고 싶다는 뜻을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했다. 민감한 과거사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도 한·일 정상의 첫 만남에 실리를 우선해 우호적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두 정상이 한·일 관계의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는 속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 정부가 중국 억제책을 지속적으로 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일 안보 체제를 강조해온 점도 한·일 결속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역시 북·중·러의 군사적 위협 강화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실용 외교’를 앞세운 이 대통령은 실리를 위해 안정된 한·일 관계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한다”며 “활발해지고 있는 한·일 경제 교류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 아니라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의 이해와 지지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일본 정부 안에서도 “지금은 한·일 모두 관계 개선을 하는 쪽에 이득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은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출 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보류하는 등 ‘현실 노선’으로 전환했다”며 “일본 역시 북·중·러가 연계 강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한·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짚었다.
다만 경제·안보 부문에서 양국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지만, 역사·영토 문제에서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아사히신문은 “한·일 관계는 안전 운전으로 시작했지만 한국 쪽에선 ‘과거사 문제에 한국만 양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다”며 “일본 쪽에서도 다카이치 총리를 지지하는 보수층을 의식하면 한·일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경주/엄지원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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