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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총리에 “맘대로 전쟁 사과하면 곤란”, ‘아베의 제자’ 다카이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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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총리에 “맘대로 전쟁 사과하면 곤란”, ‘아베의 제자’ 다카이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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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21일 도쿄 총리관저에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21일 도쿄 총리관저에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음대로 (일본을) 대표해 사과하면 곤란하다.” “침략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21일 일본의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가 과거 논란을 일으켰던 발언들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이 일으켰던 전쟁에 대해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내용이기도 하다.

산케이신문은 다카이치 총리가 초선이었던 1994년 10월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에게 질의하면서 벌였던 설전의 내용을 지난 20일 보도했다. 1993년 자신이 이끄는 자유개혁연합 소속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됐던 다카이치 총리는 당시 “과거의 전쟁을 현재의 총리가 마음대로 사과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세웠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인물로, 이는 현직 일본 총리가 식민지배에 대해 발표한 첫 사과 메시지였다.

다카이치는 당시 질의에서 “(총리가) 50년 전 정권을 단죄해, 그 결정에 의한 전쟁을 지지했던 납세자나 고귀한 생명을 바친 이들이 한 일을 잘못이라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50년 전 지도자가 한 일을 잘못이라고 단정하고 사과할 권리가 현재 50년 뒤 이 나라를 맡고 있는 무라야마 총리에게 있다고 생각하나”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다카이치의 발언에 대해 “일본의 총리로서 일본을 대표해 피해를 입었던 분들에 대해 죄송하다는 반성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가 일본을 대표해 반성의 뜻을 표시하는 것에 대해 국민적 논의가 있었나. 무엇을 침략행위라고 말하는지, 무엇이 잘못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총리가) 마음대로 대표해서 사과하면 곤란하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33세였던 1993년 처음 국회에 입성한 다카이치 총리는 1961년 나라현에서 태어났으며 고베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1996년에는 자민당에 입당했으며 중의원에서 10선 경력을 쌓았다.

‘여자 아베’, ‘아베의 제자’ 등 별명으로 불려온 다카이치 총리는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 마루카와 다마요 전 올림픽담당상 등과 함께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노선을 같이하는 여성 우익 정치인을 뜻하는 ‘아베걸즈’라고 불리기도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2006년 1차 아베 내각에서는 내각부 특임장관을, 2014년 2차 아베 내각에서는 여성 최초의 총무상을 맡은 바 있다. 그는 경제안보담당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도 역임했으며, 일본 정계에서는 보기 드문 비세습 여성 정치인이기도 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도 우익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보니 상식과 동떨어지거나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많다. 그는 초선 시절에는 “나 자신은 전쟁 당사자라고 말할 수 없는 세대이므로 반성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쟁 당시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해 왔으며, 과거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주변국의 입장과 배치되는 발언들을 거듭해 왔다. 그는 또 주변국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자학사관’이라면서 폄하해 왔다.


독도에 대해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시마네현이 매년 2월22일 개최하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보내는 정부 대표를 차관급인 정무관에서 장관으로 격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와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일본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강경 보수 성향으로 인해 그는 아사히신문의 다마가와 토오루 정치해설위원으로부터 “보수 중의 보수, 우익 중의 우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시절이던 2013년에는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없다”라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의 발언에 대해 야당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반발이 터져나왔고, 다카이치는 결국 “(발언을) 취소한다”면서 사과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7∼19일 진행된 야스쿠니신사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 기간에는 참배하지 않고 공물 대금을 봉납하면서 이전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아사히신문은 다카이치 총리가 “외교 일정을 배려해 참배를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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