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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마약 밀매 배후' 몰아 남미 좌파 대통령 축출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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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마약 밀매 배후' 몰아 남미 좌파 대통령 축출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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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페트로가 대량 생산 장려”
“美, 무고한 어부 살해” 주장에 발끈
베네수엘라 마두로에게도 같은 낙인


도널드 트럼프(왼쪽 사진) 미국 대통령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사진은 1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페트로 대통령 사진은 2023년 9월 9일 콜롬비아 칼리에서 각각 촬영됐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사진) 미국 대통령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사진은 1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페트로 대통령 사진은 2023년 9월 9일 콜롬비아 칼리에서 각각 촬영됐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콜롬비아 대통령도 마약 밀매 배후 조종자로 몰았다. 두 정상은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다. 자신한테 고분고분하지 않은 정권이 남미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개인적 악감정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례적 설전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불법 마약 수장으로서 소규모든 대규모든 콜롬비아 전역에서의 마약 대량 생산을 강하게 장려하고 있다”고 썼다. 글에서 그는 마약 생산이 콜롬비아 최대 산업이 됐고, 미국에서 마약 퇴치 명목으로 막대한 지원금과 보조금을 받고 있는데도 페트로 대통령이 이를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장기적으로 이것은 “미국을 뜯어먹는(rip off)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늘부터 이런 지원금, 어떤 형태의 지원금이나 보조금도 더는 콜롬비아에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약 생산지를 미국이 직접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마약 생산의 목적은 미국에 막대한 양의 마약을 판매해 죽음과 파괴, 대혼란을 초래하는 데 있다”며 “지지도가 낮고 미국에 무례한 말을 하는 지도자 페트로는 즉각 이 죽음의 들판(killing fields)을 폐쇄해야 한다. 그렇게 안 하면 미국이 대신 폐쇄할 텐데, 그것은 친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트로 대통령도 지지 않았다. 이날 엑스(X)를 통해 마약 밀매업자들과 콜롬비아 정치권 간 유착 관계를 폭로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반박했다. “콜롬비아는 미국에 무례한 적이 없다. 오히려 콜롬비아에 무례하고 무지한 이는 트럼프 당신”이라고도 말했다.

21세기 미국·콜롬비아 외교사에서 이런 설전은 이례적이다. 역사적으로 콜롬비아는 미국의 긴밀한 우방국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빌 클린턴 행정부(1993년 1월~2001년 1월) 이래 미국 정부는 콜롬비아 지도자들이 코카 잎(코카인 재료) 재배를 줄이고 마약 밀매 조직과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 140억 달러(약 20조 원) 이상을 제공했다.

비자까지 취소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 밖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콜롬비아 대통령실이 배포한 사진이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 밖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콜롬비아 대통령실이 배포한 사진이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불화 배경은 세 가지 정도다. 우선 콜롬비아 마약 정책의 실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좌파 게릴라 출신인 페트로 대통령은 2022년 집권 전부터 코카인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취임 뒤에는 반군 및 마약 밀매 집단과 평화 협정 체결을 추진했다. 현재 콜롬비아는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이다.


정상 간 마찰도 작용했다. 전날 페트로 대통령은 9월 이후 미국이 마약 차단 명목으로 베네수엘라발 선박을 공격하면서 무고한 자국 어부를 살해했다고 항의했다. 지난달에도 페트로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방문한 미 뉴욕의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서 트럼프 대통령 명령에 복종하지 말라고 미군에 촉구하자 미 국무부는 그의 비자를 취소했다.

이념적 반감도 크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마약 공급 조직의 뒷배로 규정한 남미 좌파 정상은 페트로 대통령만이 아니다. 그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영토 내 비밀공작까지 허용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핵심 표적에 가깝다. 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인 페트로는 마두로의 동맹이다.

이 와중에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은 이날 X를 통해 17일 미군이 콜롬비아 반군인 ‘민족해방군(NLA)’ 선박을 공해상에서 격침, 3명의 마약 테러리스트가 제거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9월부터 수십 명을 죽인 카리브해 마약 운반선 공습의 법적 근거에 대한 초당적 조사에 직면해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