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일본 도쿄 사회민주당 본부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일본 내각 중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와 반성을 나타낸 이와 같은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별세 뒤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서도 애도와 추모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일 유족에게 위로를 하는 조전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게 보냈다. 시 주석은 “무라야마 전 총리는 정의감이 강한 일본 정치인이자 중국 인민의 오랜 벗으로서 오랫동안 중-일 우호 증진에 헌신해왔다”며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무라야마 전 총리가 101살로 별세한 지난 17일 페이스북 글에서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명해 일본은 물론 이웃 나라 국민에게도 뜨거운 울림과 감동을 줬다”며 “고인의 업적과 헌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라며 “영혼이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가 대표를 역임했던 사회당을 전신으로 둔 사민당의 대표인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은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정치에 큰 의미가 있는 담화였다. 전쟁 반대와 평화에 대한 생각이 정말로 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오이타현의 어부 집안에서 태어난 무라야마 전 총리는 메이지대의 전신인 메이지전문부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뒤 어민 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운동과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사회당 대표이던 1994년 4월 그는 자민당·사키가케 양당과 연정을 구성해 1996년 1월까지 81대 총리로 재임했다.
그는 총리 재직 당시인 1995년 8월 일본의 2차대전 패전 50주년을 맞아 ‘전후 50주년 담화’라는 역사적 담화를 내각 결의(국무회의 의결)를 거쳐 냈다. 무라야마 담화라고 불리는 이 담화에서 그는 당시 일본 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뚜렷한 식민지 지배 및 침략전쟁 반성을 정부 공식 견해로 채택했다. 2015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후손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아베 담화를 발표하면서도, 역대 내각의 담화는 계승한다고 했다. 아베 당시 총리는 더 이상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표방하면서도, 무라야마 담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95년 2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여성기금이 지급한 돈은 일본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나온 기부금이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일 “차기 정부가 이웃 국가와 관계를 설정할 때 무라야마 정부의 ‘전후 반성’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며 “다당제 시대로 접어든 일본 정치에서 과거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도 교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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