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별세
AFP 연합뉴스17일 별세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2015년 일본 도쿄 외신 기자 클럽 행사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일본 총리 최초로 재임 시절 한국 식민 지배를 사죄하는 담화를 냈다. |
일본 총리 최초로 재임 시절 한국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하는 담화를 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101) 전 총리가 17일 고향인 규슈 오이타현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4년 오이타현의 어촌에서 태어난 무라야마는 도쿄시립상업학교 야간과를 졸업하고 메이지대 정치경제학과에 진학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육군에 징집돼 1945년 종전까지 군에서 복무했다. 대학 졸업 후 1946년 고향으로 돌아가 어촌민주화운동에 매진하다 사회당에 입당했다. 시의원·현의원을 거쳐 1972년 중의원에 처음 당선돼 8선을 했다. 1994년 6월 자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81대 총리에 취임했고 1996년 1월까지 재임했다. 사회당으로서는 47년 만의 총리였다.
평화 노선의 주창자였던 무라야마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 문제와 연관된 과거사 문제 해결에 매진해,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그는 1995년 8월 15일 ‘전후 50주년의 종전 기념일을 맞아’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내각회의를 거친 담화에서 ‘통절한 반성’ ‘진심’ ‘사죄’ 등 명확한 표현으로 총리가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집권한 역대 일본 정부는 이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방식 등으로 사죄의 뜻을 전해왔다.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로 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역시 무라야마 담화가 토대가 됐다.
무라야마는 1995년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도 발족시켰다. 정계 은퇴 뒤에도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장을 맡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금’ 모금을 추진했다. 그는 1999년에 초당파 방문단 단장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무라야마는 1987년 일본에서 총리 재산 공개 제도가 시작된 이후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총리였다. 총리 시절 “나는 연중무휴로 일하는 어부 출신이니 휴가는 필요 없다”고 했다가 “해외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주변 만류에 도쿄 근교 하코네 료칸(여관)으로 휴가를 간 일화도 있다. 인자한 할아버지의 인상으로 일본에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를 끌어 ‘톤짱’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지난해 100세 생일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무리하지 않고 사는 것”을 장수의 비결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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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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