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침략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 주인공
소탈하고 조용한 말년 “평화로운 나라” 기원
소탈하고 조용한 말년 “평화로운 나라” 기원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전후 50년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7일 오이타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연합뉴스 |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17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NHK와 교도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날 규슈 오이타현 오이타시의 한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환으로 사망했다.
1994년 총리직에 오른 그는 전후 50주년이던 199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로 국제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날 종전 50주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이 잘못된 국가 정책 아래 전쟁의 길을 걸었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에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초래했다”는 점을 담담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밝혔다. 이어 “겸허한 자세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한다”는 문구를 더해 사죄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 담화는 한국과 중국,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진전된 표현’으로 평가받았고 이후 총리 담화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사회당(현 사민당) 출신으로, 1994년 보수 성향의 자민당과 손잡고 이례적인 연립 정권을 구성했다. 재임 기간은 일본 현대사의 격랑기였다. 1995년 사망 및 실종자가 6000여명에 달했던 고베 대지진과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가 잇달아 발생해 국가 위기 대응 체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초기 대응을 둘러싼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사회 불안 속에서도 평화 헌법의 가치를 강조하며 안정적 국정 운영을 도모했다.
1995년 1월 일본 한신대지진 피해지를 시찰하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일본 총리. 무라야마 전 총리는 17일 오전 오이타 시내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
퇴임 후 그는 사회당 위원장을 다시 맡기도 하고 1999년에는 초당파 방문단 단장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퇴임 이후에도 역사 인식과 개헌 시도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일부 보수 정치권의 평화 헌법 개정 시도, 과거사 표현의 후퇴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지난 2020년 무라야마 담화 25주년을 맞아서도 “과거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의 평화·번영의 우호 관계를 장기간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24년 오이타현 어촌마을에서 11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그는, 야간 상업고를 다니며 생업과 학업을 병행했다. 군 복무를 거쳐 1946년 메이지대 졸업 후 수산협동조합에서 노동 운동과 지역사회 활동에 힘썼다. 그는 오이타현 의회 의원을 거쳐 1972년 중의원에 입성했다. 1993년 사회당 대표에 선출된 뒤 이듬해 총리에 올랐다. 1996년 총리직을 내려놓은 뒤 2000년 정계를 은퇴, 말년에는 고향에서 주 3회 ‘데이케어’(일본의 노인 이용시설)에 다니는 등 소탈한 삶을 살았다.
지난해에는 100세 생일을 맞아 화제를 모았다. 100세 생일을 앞두고 발표한 메시지에서 그는 “일본이 계속 평화로운 나라이기를 기원한다”면서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사는 것, 하루하루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장수 비결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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