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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통절한 반성"… 日 첫 공식 사죄 이끈 무라야마 전 총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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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통절한 반성"… 日 첫 공식 사죄 이끈 무라야마 전 총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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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101세… 노환으로 사망
"아시아 여러 나라에 고통" 공식 사죄하며
일본 정부 전향적 입장 첫 발걸음 뗀 인물
'피해자 법적 배상 끝났다' 입장은 한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2015년 3월 일본 도쿄의 사회민주당 청사에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2015년 3월 일본 도쿄의 사회민주당 청사에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일본 정부 차원의 첫 식민지배 사죄를 주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1세.

총리 된 어부의 아들… 두 번째 사회당 총리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은 무라야마 전 총리가 17일 오전 일본 오이타현 오이타시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1924년 일본 오이타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진보 계열 정당인 일본사회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 1972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당선돼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1993년 집권 자민당이 뇌물 의혹과 파벌 다툼으로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55년 체제(1955년부터 이어진 자민당 우위 정치 구도)'가 붕괴됐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후 비(非)자민·비(非)공산 연합으로 구성된 호소카와 내각이 들어서자 위원장을 맡아 연립 여당이 된 사회당을 이끌었다. 이후 호소카와 내각이 내부 의견 차로 무너지자 이듬해 자민당의 협조를 받아 총리 자리에 올랐다. 사회당 출신 총리로서는 역대 2번째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한국에서는 1995년 재임 중 발표한 '전후 50년 담화(일명 무라야마 담화)'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당시 내각 의결을 거친 담화를 통해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트렸다"며 "식민지배기와 침락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일본 식민지배 첫 사과 담긴 무라야마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도쿄=교도 연합뉴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도쿄=교도 연합뉴스

담화에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한다"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역사로 인한 (국가) 안팎의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일본 정부가 아시아 국가 국민들을 향해 처음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언급한 것이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정부 관여를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 사죄를 재차 확인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함께 일본의 솔직한 사죄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담화와 별개로 무라야마 총리 본인이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배상은 이미 완료됐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것은 한계로 평가받는다.


무라야마 담화는 여전히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2015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후대에 사죄를 계속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한 이후로는 다소 의미가 빛을 바랬다. 현재 재임 중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개인 명의로 발표한 '전후 80년 소감'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언급하며 "저 역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밝혔을 뿐, 주변국에 대한 사죄 의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재임 기간 중 △한신·이와지 대지진 △도쿄 옴진리교 사린 테러 사건 등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시험받은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96년 총리에서 사임한 이후 사회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이후 1999년 초당파 방문단 단장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2000년에는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본인이 총리 재임 시절 설립한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장을 맡아 '위안부' 배상 문제가 과거 합의로 해결됐다는 인식 아래 피해자 '사과금' 모금을 추진했다. 말년에는 주 3회 '데이케어(일본의 노인 이용시설)'에 다니는 등 소탈한 삶을 살았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