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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속에서 촛불 켰다"… 음속 6배 넘은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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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속에서 촛불 켰다"… 음속 6배 넘은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서울맑음 / 4.3 °
시험발사 고도 23km, 속도 마하 6
2028년 순항미사일 실전배치 목표
초고난도 기술... 개발 미·중·러뿐
기존 방어체계로 요격 사실상 불가
"방위산업 전반 기술혁신 교두보"

편집자주

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개발 중인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가 시험발사되고 있다. ADD 제공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개발 중인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가 시험발사되고 있다. ADD 제공


초속 약 2.06㎞. 음속의 6배인 마하 6의 속도다. 2018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하고 민간 방산기업이 참여해 극비리에 개발 중인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가 지난해 시험발사에서 기록한 최고 속도이기도 하다. 최강 전투기 F-22 랩터의 최고 속도(마하 2.5)보다 2배 이상 빨라 서울에서 평양까지 2분도 채 안 걸린다. 말이 비행체지 사실상 순항미사일 직전 단계다. 극초음속 비행체의 핵심 기술 개발에 성공한 ADD는 2028년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실전 배치를 목표로 잡았다.

초속 2000m에서 흡입 공기로 연소


초음속은 마하 1 이상 5 미만, 극초음속은 마하 5 이상이다. 최고 고도 22㎞, 마하 5의 속도에서 5초 이상 연소 유지를 목표로 개발된 하이코어는 시험발사에서 최고 고도 23㎞, 최고 속도 마하 6을 기록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미국 군사 전문 매체 워존(TWZ)은 하이코어를 '길이 8.7m, 중량 2,400㎏, 최고 속도 마하 6.2'라고 소개했다.

2021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공개한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의 초기 설계 모형. ADD 제공

2021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공개한 한국형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의 초기 설계 모형. ADD 제공


하이코어가 성공해낸 추진체 기술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의 첫 관문으로 꼽힌다. 우주발사체나 탄도미사일처럼 대기권을 벗어나는 경우 추진체는 연료와 산화제를 동시에 싣는 로켓 형태다. 하지만 적의 요격을 피해 낮은 고도로 장거리를 비행해야 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경량화와 비행 효율을 위해 대기 중의 산소를 흡입해 연소한다. 그래서 스크램제트 엔진이 적용된다. 이번에 검증한 건 스크램제트의 전 단계인 '이중모드램제트 엔진'이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은 이 기술에 대해 "태풍 속에서 촛불을 켜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초대형 태풍의 풍속이 초속 60~70m인데, 초속 2,000m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면서 흡입구로 빨려들어온 공기를 이용해 연소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초고난도 기술이란 것이다. 미국 랜드연구소 역시 "극초음속 영역에선 미세한 불안정에도 화염이 꺼지거나 구조가 파손될 수 있다"고 기술적 어려움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극초음속 미사일에는 △섭씨 2,000도 이상의 열을 견디는 소재와 열 관리 시스템 △미사일 주변의 강력한 충격파 속에서 정확한 경로를 유지하는 고도화한 비행 제어 기술이 요구된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그래픽=박종범 기자


일본·인도·이란·호주·북한, 개발 경쟁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해 실전에 배치한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 미국뿐이다. 극초음속 기술의 원조 격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공중 발사형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마하 5)을 투입해 주목받았다.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되는 극초음속 활공 비행체 '아방가르드'는 2019년 실전 배치됐는데, 전략핵 탑재가 가능한 데다 최고 속도가 무려 마하 20 이상으로 추정돼 '괴물 미사일'로 꼽힌다. 중국은 2019년 '둥펑-17'을 공개했는데, 마하 5~10 수준으로 알려졌다. 미국 육군은 2023년 극초음속 미사일 '다크 이글'의 실전 배치를 시작했는데, 마하 17에 사거리는 약 2,800㎞이다.


일본, 인도, 이란, 호주, 북한 등도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일본은 기존 계획을 3년 앞당겨 내년부터 초기형 모델을 실전 배치할 계획이며, 2030년까지 사거리를 대폭 늘린 개량형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공들이는 이유는 명실상부한 게임 체인저이기 때문이다. 현존 미사일 방어체계로는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탄도미사일과 달리 변칙적으로 궤적을 바꾸며 낮은 고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요격이 어렵다"면서 "무기체계와 함께 조기 탐지·추적, 요격체계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한국이 극초음속 미사일의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대북 억제력의 핵심인 킬체인과 해상 위협 저지의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고, 극초음속 무인기 개발과 연계할 수도 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이번 성과는 첨단소재, 엔진, 전자유도 등 방위산업 전반의 혁신을 견인하는 기술적 교두보"라며 "선제 타격 능력의 신뢰성을 높여 확실한 억제력 강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