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이터 = 연합뉴스] |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월가와 산업계 일각에서는 ‘거품’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글로벌 기술 기업이 서로 얽혀 거대한 자금 순환 구조를 형성하면서 수요보다 부풀려진 기대가 불안 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시장에는 기술 진보가 생산성 혁신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과 과도한 자본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불안이 맞물리면서 혼란스러운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자금 조달 방식이다. 오픈AI는 최근 엔비디아와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약을 맺은 데 이어 AMD에서 연간 수백억 달러어치의 장비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 오라클과 맺은 3000억달러 규모 클라우드 계약까지 더해지면서 초대형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와 공급업체 간 자금이 서로 맞물리며 일각에서는 ‘판매자 금융(vendor financing)’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업체가 고객사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다시 공급업체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순환 방식이다. 겉으로는 이러한 거래를 통해 매출이 폭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금이 순환하는 ‘돌려막기식 투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이 사이클에 몸담은 다수 기업이 한 번에 흔들릴 수 있다.
뉴욕 월스트리트 [사진 = 연합뉴스] |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자본 지출 붐을 주도하는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기업의 사이클이 7회 말 단계에 진입했다”며 “인프라스트럭처 공급업체가 고객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수익을 공유하면서 상호 소유권과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는 2000년대 초 인터넷 버블 시기 캐나다 통신장비업체 노텔의 몰락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노텔은 고객사가 자금을 빌려 자사 장비를 사도록 하며 매출을 부풀렸으나 버블이 꺼지자 대규모 채무불이행이 이어지며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한 바 있다.
국제금융기구도 경고에 나섰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AI에 대한 낙관론이 갑작스레 반전되면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현재 주식시장 밸류에이션이 25년 전 인터넷 붐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닷컴 버블과의 차별점도 뚜렷하다. 현재 AI 붐은 현금 창출력이 막강한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AI 서비스 이용자와 매출의 초기 궤적 역시 가파르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을 예견했던 하워드 마크스 오크트리자산운용 회장은 13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AI 종목의 밸류에이션이 높긴 하지만 아직 광기 수준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그는 “버블은 심리적 과열에서 비롯되지만, 지금의 AI 투자는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며 “AI는 결국 산업을 바꿀 기술”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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