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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분노’에 마다가스카르 정권 붕괴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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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분노’에 마다가스카르 정권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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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해외 피신설’ 대통령 전격 탄핵
軍 엘리트가 시위대 동참하며 정권에 ‘결정타’
군부, 대통령궁에서 “권력 장악” 선언
14일(현지시간)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 독립대로 시청 앞에서 열린 전국 청년 주도 시위에서 군이 시위대에 합류한 뒤 참가자들이 차량에 올라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번 시위는 잦은 단전과 단수에 항의하며 시작돼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 독립대로 시청 앞에서 열린 전국 청년 주도 시위에서 군이 시위대에 합류한 뒤 참가자들이 차량에 올라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번 시위는 잦은 단전과 단수에 항의하며 시작돼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2주 넘게 이어진 청년층 시위에 군이 동참하면서 안드리 라조엘리나(50) 대통령 정권이 결국 붕괴했다. 라조엘리나가 해외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마다가스카르 의회가 14일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고 이어서 군이 권력 장악을 선언하며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라조엘리나는 앞서 2009년 군의 지원으로 전 정권을 무너트리고 첫 집권했다. 이후 16년 만에 자신을 지지했던 군 내부의 반란으로 축출되는 운명이 됐다.

마다가스카르 의회는 이날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긴급 회의를 열어 라조엘리나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라조엘리나는 전날 야당이 자신의 탄핵안을 발의하자, 이를 막기 위해 의회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공식 문서가 아닌, 대통령실 페이스북을 통해 전달됐다. 야당 지도자인 시테니 랜드리아나솔로니아코 의회 부의장은 그러나 “의장과 사전 협의 없이 내려진 해산 명령은 법적으로 무효”라며 대통령 탄핵 절차를 강행했다.

이어서 군부를 대표해 미카엘 란드리아니리나 캡사트(CAPSAT) 부대장(대령)이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군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라조엘리나 정권은 지난 2019년 재집권한지 6년여 만에 붕괴했다. 라조엘리나는 현재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전날 페이스북으로 중계된 영상 연설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프랑스 RFI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라조엘리나가 12일 프랑스 군용기를 타고 출국했다”고 보도했다.

마다가스카르 엘리트 군부대 캡사트(CAPSAT) 부대장 미카엘 란드리아니리나(가운데) 대령이 14일(현지시간) 수도 안타나나리보 대통령궁 앞에서 “군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선언하는 성명을 낭독한 뒤 동료 장교들과 함께 서 있다. 캡사트는 이날 의회가 라조엘리나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직후 정권 장악을 발표했다. /AFP 연합뉴스

마다가스카르 엘리트 군부대 캡사트(CAPSAT) 부대장 미카엘 란드리아니리나(가운데) 대령이 14일(현지시간) 수도 안타나나리보 대통령궁 앞에서 “군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선언하는 성명을 낭독한 뒤 동료 장교들과 함께 서 있다. 캡사트는 이날 의회가 라조엘리나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직후 정권 장악을 발표했다. /AFP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지난달 25일 수도 안타나나리보와 주요 도시에서 잦은 단수와 정전에 항의하며 시작된 청년층 시위에서 비롯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생인 이른바 ‘Z세대’들이 “전기보다 자유” 구호와 함께 시위를 주도했다. 라조엘리나 대통령은 내각을 해산하고, 군 장성 출신 루핀 포르투나 자피삼보를 새 총리로 임명해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시위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유엔은 지난달 25~26일 이틀간에만 최소 22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파악했다.

팽팽한 대립이 이어져 온 사태는 11일 군이 시위대 편을 들며 변곡점을 맞았다. 수도 외곽 소아니에라나 지역의 육군 행정·기술 장교로 구성된 캡사트 부대가 “시민에게 발포하지 않겠다”며 시위대에 합류했다. 이 부대는 지난 2009년 라조엘리나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를 도와 당시 마르크 라발로마나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라조엘리나의 첫 집권 문을 열어 준 군 내 엘리트 조직이다.

라조엘리나 대통령은 “불법 쿠데타가 진행 중”이라며 헌법 질서 유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헌병대와 경찰도 잇달아 반정부 진영으로 돌아섰고, 캡사트는 “육·해·공군의 모든 명령은 이제 캡사트 본부에서 발령된다”고 선언, 군을 장악했다. 시위대는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1980년대 민주화 시위 상징인 ‘5·13 광장’을 점령했다.


현지 매체들은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한 가운데, 수도의 행정 기능이 멈추면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에미레이트항공과 에어프랑스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마다가스카르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아프리카연합(AU)은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마다가스카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이후 쿠데타와 정권 교체가 반복돼 왔다. 인구의 약 75%가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고, 실업률은 40%에 이른다. 세계 최대의 바닐라 생산국이자 풍부한 자원을 지닌 나라지만, 빈곤과 전력난, 부패가 청년 세대의 분노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로이터 등은 “이번 사태는 네팔에 이어 Z세대 시위가 정부를 무너뜨린 두 번째 사례가 될 수 있다”며 “SNS를 통한 조직력과 군 내부의 동조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대중운동”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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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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