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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전쟁 중 집단 학살’ 고양시 금정굴, 쪼개진 채 공공택지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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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전쟁 중 집단 학살’ 고양시 금정굴, 쪼개진 채 공공택지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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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탄현동 산23-1 금정굴 현장에서 열린 2025년 제75주기(제33회) 고양지역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탄현동 산23-1 금정굴 현장에서 열린 2025년 제75주기(제33회) 고양지역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1950년 한국전쟁기에 경찰이 150명 넘는 민간인을 집단 학살해 암매장한 고양 금정굴 사건 현장이 공공주택 개발사업 과정에서 일부만 편입돼 반으로 쪼개질 위험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18년 전 평화공원과 위령 시설 등을 세우라고 정부와 지자체에 권고한 지역이어서, 부지 확보를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의원실이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12일 보면, 2007년 1기 진실화해위가 고양 금정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하며 ‘금정굴 지역에 평화공원을 설립할 것’을 경찰청과 고양시에 권고했으나 현재까지 미이행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 과정에서 2020년 엘에이치(LH,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고양시 탄현 공공주택지구를 계획하며 금정굴 부지 712㎡ 중 492㎡만 쪼개어 편입했고, 국토교통부는 이를 승인했다. 주택지구 공사는 올해 6월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2009년 9월7일 오후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검실 유골 보관실에서 고양 금정굴 민간인학살사건 유족들이 1995년에 발굴된 고양시 일산 금정굴 학살 유골 임시 보관처에서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이 유골들은 2025년 현재까지 개별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상태로 세종시 시립 납골당에 임시 보관되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9년 9월7일 오후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검실 유골 보관실에서 고양 금정굴 민간인학살사건 유족들이 1995년에 발굴된 고양시 일산 금정굴 학살 유골 임시 보관처에서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이 유골들은 2025년 현재까지 개별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상태로 세종시 시립 납골당에 임시 보관되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고양 금정굴 사건은 1950년 10월9일부터 31일까지 고양 지역과 파주 일부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 153명 이상이 부역혐의자 및 부역혐의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 의해 금정굴에서 불법적으로 집단총살돼 동굴에 암매장된 일이다. 문민정부 출범 뒤인 1995년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유족과 시민들이 유해발굴에 나선 곳이기도 하다. 153명은 금정굴에서 발굴된 유해 숫자인데,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피해자는 81명(1기 76명, 2기 5명)이다. 진실화해위는 가해 기관으로 밝혀진 경찰청과 관할 지자체인 고양시를 평화공원 조성 권고 등을 이행해야 할 대한 소관 기관으로 지정했다.



11일 열린 제33회 ‘고양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 초대장. 그림은 2009년께 시민사회 내부에서 제안한 평화공원 모습이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11일 열린 제33회 ‘고양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 초대장. 그림은 2009년께 시민사회 내부에서 제안한 평화공원 모습이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금정굴 부지는 LH에 의해 근린공원으로 수용됐지만 파란 동그라미에서 보듯 일부만 편입됐다. 김성회 의원실 제공

금정굴 부지는 LH에 의해 근린공원으로 수용됐지만 파란 동그라미에서 보듯 일부만 편입됐다. 김성회 의원실 제공

하지만 경찰청은 김성회 의원실에 “1기 진실화해위로부터 국가 공식 사과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 8개 권고를 받아 이중 ‘역사관 건립 등’에 대해서만 완료하지 못했다”며 “현재 진실화해위가 추진 중인 ‘과거사연구재단’ 설립과 연계하겠다”고 답했다. 사실상 책임을 미뤘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아울러 “금정굴 일대가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어 고양시와 엘에이치·국토교통부 간 ‘금정굴 평화공원’ 조성에 협의 중인 바, 이와 연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부지가 쪼개진 현재 상황을 해결할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택지를 매입한 엘에이치와 국토교통부 쪽은 자신들에게 평화공원 조성 의무가 없고, 이를 위해 남은 부지를 마저 매입하는 것이 공공주택 사업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화해위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도 “소관 기관 및 엘에이치·국토교통부 등과 논의를 한 적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김성회 의원실에 냈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은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탄현동 산23-1 금정굴 현장에서 열린 2025년 제75주기(제33회) 고양지역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석했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은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탄현동 산23-1 금정굴 현장에서 열린 2025년 제75주기(제33회) 고양지역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석했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공


고양시 성석동과 탄현동 경계에 있는 금정굴 현장 부지는 애초 두 개의 특정 종중이 소유한 사유지로, 엘에이치는 주택사업 계획 과정에서 한 쪽 종중의 토지만 매입했다고 한다. 이에 고양시와 금정굴인권평화재단 등 시민사회가 엘에이치와 국토교통부에 남은 금정굴 부지도 공공주택지구로 편입해, 평화공원을 조성할 것을 요청했으나 5년이 넘도록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양시는 지역 보수단체 반대와 예산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18년 ‘고양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평화공원 등의 설립 근거를 마련했다. ‘부지 확보’ 과제만 남겨둔 셈이다.



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 출신으로 오랫동안 금정굴 사건을 조사·연구해온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신기철 연구소장은 “위령 시설에 대해 납골당 운운하며 반대해 온 세력 때문에 그동안 큰 어려움을 겪었다. 더 늦지 않게 부지를 확보해 유해와 유품에 대한 현장보전을 하고 피해자 추모와 역사교육의 공간을 조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회 의원도 “금정굴이 쪼개질 위험에 처하는 동안 ‘평화공원 조성 권고’를 책임져야 할 경찰청과 행안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외면했다”며 “지금이라도 자국민을 대상으로 학살을 저지른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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