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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국인이 산 채로 배 갈라?" 10대들 허위정보에 휘둘리는데…'미디어 리터러시' 예산 줄인 교육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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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국인이 산 채로 배 갈라?" 10대들 허위정보에 휘둘리는데…'미디어 리터러시' 예산 줄인 교육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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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배를 가른다" 괴담 믿는 10대들
시도 7곳은 미디어 리터러시 예산 되레 줄여
영상 제작 등 무관한 영역에 예산 투입하기도
"국가 차원에서 구체적인 교육계획 수립해야"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0대 청소년을 중심으로 퍼진 중국인 장기매매 괴담.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0대 청소년을 중심으로 퍼진 중국인 장기매매 괴담. 인스타그램 캡처


중국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허용됐단 소식이 전해진 이달 초, 중등 3학년 A양은 한 친구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장문의 글을 보고 덜컥 겁을 먹었다.

"중국인들이 장기매매를 위해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에 와서 사람을 납치해 산 채로 배를 가른다더라"며 "(무비자 입국을 반대하는) 국민동의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급한 상황이니 '스공('스토리를 공유한다'의 줄임말)' 부탁한다"는 친구 말에 A양은 황급히 이를 자신의 계정에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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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계층 혐오를 조장하는 유튜브발 가짜뉴스가 확산하는 와중,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속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과 분석력) 역량이 부족한 10대들이 고스란히 이에 영향을 받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일부 지역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예산이 오히려 줄어든 데다 중앙 정부 차원의 대책도 없어, 청소년들이 허위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됐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많은 곳은 14억, 적은 곳은 1500만 원... 7곳은 예산 줄었다



1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7개 시도 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교육청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현황에 따르면, 미디어 리터러시 예산 규모·항목은 지역별로 제각각이었다. 총액은 지난해(34억3,688만 원)보다 올해 3억7,443만 원 늘어 총 38억1,131만 원이었지만, 예산이 가장 많은 곳과 가장 적은 곳의 차이가 9배 넘게 벌어질 정도로 지역별 격차가 컸다.

전국 광역지자체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예산. 붉은 글씨는 전년 대비 줄어든 지역. 그래픽=김대훈 기자

전국 광역지자체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예산. 붉은 글씨는 전년 대비 줄어든 지역. 그래픽=김대훈 기자


구체적으로 올해 전체 시도 중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분야에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한 곳은 경기교육청으로 총 14억6,700만 원을 편성했다. 반대로 가장 적은 규모를 편성한 곳은 강원교육청으로 1,570만 원에 불과해 격차가 14억5,000만 원에 달했다.

물론 지역 간 학교·학생 수 차이가 있는 만큼 예산 수준이 다를 순 있다. 하지만 경기교육청이 2021년(1,007만 원) 이후 △2022년 5억6,796만8,000원 △2023년 12억2,536만 원 등 예산을 크게 늘리는 동안 강원교육청은 오히려 경기보다 예산이 많았던 2021년(7,920만 원) 이후 △2022년 3,670만 원 △2023년 2,000만 원 등으로 계속 예산을 줄여왔다.


강원 지역을 포함해 전년 대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예산이 줄어든 지역은 총 7곳이나 됐다. 특히 부산은 지난해 1억6,547만 원에서 올해 4,950만 원으로 70%가량 대폭 감소했다. 대구도 지난해 1억1,988만 원에서 올해 6,950만 원으로 약 58% 줄었다.

강원·부산교육청은 "교육부 특별교부금 예산이 줄면서 해당 예산도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교육청은 "인쇄비 등 부수적인 항목에서 예산이 줄었을 뿐 강사 인건비 등 교육에 직결되는 항목은 유지 중"이라고 해명했다.

영상 제작, 영화제가 미디어 리터러시? "구체적 지침 필요"



5월 7일 강원 춘천시 남산초등학교에서 열린 디지털교과서(AIDT) 활용 수업 현장 공개 행사에서 학생들이 AIDT를 활용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7일 강원 춘천시 남산초등학교에서 열린 디지털교과서(AIDT) 활용 수업 현장 공개 행사에서 학생들이 AIDT를 활용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을 비교적 많이 투입했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관련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 곳도 있었다. 경기 다음으로 많은 예산인 5억5,000만 원을 편성한 충북은 예산의 5분의 1가량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크게 상관없는 △영상 콘텐츠 개발·제작 △영화제 운영 △제작 장비·시설 대여 등에 투입됐다. 대전도 예산 일부가 학생독립영화제 등 영화 관련 분야에 할당됐다.


이를 두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교육당국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란 진단이 이어졌다. 정현선 경인교육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장은 "국내 미디어 교육은 '영상 콘텐츠 만들기'처럼 기술적·절차적 차원의 기능주의적 접근에 그친다"며 "정작 미디어 플랫폼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해 메시지를 선별·제공하는지, 그 이면의 의도는 다루지 않는다는 게 한계"라고 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학생이 습득해야 할 기초소양으로 미디어·디지털 리터러시 개념이 명시돼 있긴 하다. 하지만 교육부 차원에서 교육기본계획을 수립하지 않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체계화할 근거가 없다. 현존하는 것이라곤 각 교육청 단위로 세워둔 교육계획이 전부다.

반면 미디어 리터러시 선진국으로 꼽히는 핀란드는 교육문화부가 미디어교육 및 시청각미디어 부서를 두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총괄 담당한다. 정 소장은 "우리나라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필요성을 추상적으로만 언급한 수준에서 나아가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교육 지침이 나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민정 의원 역시 "최근 중국인 장기매매 허위정보 등 청소년이 가짜뉴스에 노출되는 현상과 더불어 판별 능력도 문제가 되고 있다"며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모든 학생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종합계획을 마련·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