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파이낸셜뉴스 언론사 이미지

손끝으로 쓱쓱… 어린아이 낙서 같기도 [이현희의 '아트톡']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원문보기

손끝으로 쓱쓱… 어린아이 낙서 같기도 [이현희의 '아트톡']

서울맑음 / 11.0 °
아야코 록카쿠 '무제 ARP09-017'


아야코 록카쿠 '무제 (ARP09-017)' 서울옥션 제공

아야코 록카쿠 '무제 (ARP09-017)' 서울옥션 제공


일본 화가 아야코 록카쿠의 작품에는 큰 눈을 가진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주로 화폭의 한 켠 혹은 전면에 걸쳐 소녀를 묘사하는데 호기심 많고 생기 넘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한다.

2009년 제작된 캔버스 작품 '무제 (ARP09-017)'에도 한 손에 꽃을 든 채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녀가 좌측상단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소녀를 에워싸듯 새, 자동차, 꽃잎 등 다양한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여러 이미지들이 군집을 이룬 채 화려한 색감으로 채워진 화면은 종이 혹은 벽에 자신들만의 세계를 풀어놓는 아이들의 낙서처럼 천진하다. 작품 구성 측면에서는 각 이미지들의 배열방식과 묘사방식에 차등을 두어 확장된 공간감이 돋보인다.

록카쿠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으로 진학했던 대학을 포기하고 순수미술로 전향했다. 창작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보다 주체적인 역할로 남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다시 정규 교육을 선택하지 않고 홀로 작업을 시작했다.

정식 미술교육을 거치지 않은 록카쿠의 작품은 재료 및 기법에 있어 특정 개념이나 양식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특히 '붓'이라는 매개체를 생략한 채 손을 이용한 직접적인 채색 방식이 특징이다. 손에 묻은 물감을 지우려 주변에 있던 상자에 비볐을 때 느꼈던 촉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손이 물감이나 화폭의 표면에 직접적으로 닿을 때 생기는 마찰과 열기에서 영감을 찾는다.

작품은 사전 스케치 없이, 화면을 마주한 작가가 즉흥적으로 그려낸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화에 수줍음을 많이 느꼈던 작가에게 작품은 외부와의 연결점이다. 작업에는 자신의 생각과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다. 즉, 빈 화폭에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작가 마음속 내밀한 속삭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이현희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