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국정운영 청사진…방첩사 폐지
K-방산 이후 군사정보 간첩활동 증가세
'요즘도 간첩있냐'는 무지몽매 지양해야
K-방산 이후 군사정보 간첩활동 증가세
'요즘도 간첩있냐'는 무지몽매 지양해야
국민주권당과 자주민주통일민족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8월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방첩사, 드론사, 심리전단 해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
과거 부대에 사복을 입은 보안사 요원이 나타나면, 그 부대 간부들은 하던 대화를 중단했다. 요원들은 싱거운 농담을 하며 자신들의 관심 사항을 에둘러서 조사했다. 군 간부들에 대한 세평 및 근무동향을 치밀하게 파악했고 부대 운용 비리 감시 등도 관심사였다. 부대 내에 대공(對共) 요인 적발은 정보수집의 최우선 순위였다. 이외에도 보도되지 않은 다양한 군 관련 리스크 관리가 핵심 업무였다.
알려지지 않은 비화도 적지 않다. 전방 부대에 근무하던 육군 헬기 조종사는 진급에 탈락하자 회식 자리에서 사단장을 태우고 38선을 넘어 월북하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첩보를 입수한 방첩사는 즉시 사단에 통보해 보직 해임에 들어갔다. 사단장과 헬기가 자진 월북하는 경우는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8월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청사진을 공개하면서 "방첩사는 폐지하고, 필수 기능은 분산 이관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방첩사가 보유한 내란·외환·반란죄와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10개 혐의의 수사권은 국방조사본부로 넘어간다. 방첩사의 핵심 업무인 정보수집 권한도 분리된다. 국방부와 합참 예하 부대원 및 방위사업체 종사자들에 대한 정보수집 권한도 합동참모본부에 넘긴다. 요컨대 방첩사 3대 기능 중 '방첩'만 남기고, '수사'와 '정보수집'은 이관한다. 방첩 기능도 수사 기능이 이관되는 조직으로 점차 흡수돼 결국 폐지되는 시나리오다.
방첩사는 국방부장관 소속으로 군사보안, 군 방첩(防諜) 및 군에 관한 정보의 수집·처리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부대다. 국군조직법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2022년 11월 1일 제정·시행된 ‘국군방첩사령부령’에 의해 직제와 직무가 규정되어 있다.
그동안 군의 정치 개입 논란과 과도한 권한 행사 등으로 특무부대→ 보안사→기무사→ 안보지원사→ 방첩사 등 명칭이 수차례 바뀌었다. 애초에 부령이 아닌 법률로 직제를 규정했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명칭이 변경되는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는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의 지적은 의미가 있다.
국정기획위가 개편 3년 만에 방첩사를 해체하려는 명분은 계엄 관여다. 지휘관이 문제가 있다면 문책하고 교체하면 된다. 다양한 기능을 하는 방첩사가 해체될 경우 1948년 여순·순천 반란 당시와 같이 군내 간첩 침투 차단과 방산 기밀 탈취 방어 등의 업무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수사권을 이양받는 국방조사본부는 해외·특수정보 및 군사보안을 담당하는 기관이지 수사 전문기관이 아니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정보수집 전문기관이 아니다. 방첩, 수사와 정보 수집은 세 가지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될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 대법원에서 F-35A 스텔스 전투기 등의 군사기밀 탈취 혐의를 받는 청주간첩단에 대해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북한의 간첩행위가 군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한민국이 방산 세계 5위 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 민간에서 탈취하는 산업기술 분야보다 군의 첨단무기 기밀과 방산 군사기술이 간첩 활동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 방첩사 업무 영역은 오히려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1953년 제정된 형법의 간첩죄는 그 적용을 ‘적’에게 한정하고 있어, 외국의 군사기밀 탈취행위를 적발해도 처벌이 불가하다. 여당의 소극적 자세로 간첩죄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정원의 수사권은 경찰로 이관됐다. 올 들어서만 군사시설에 접근해 무단 촬영한 사례가 10여건을 넘는 등 적과 외국의 간첩 활동 범위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이 간첩 잡는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는 현실에서 군의 보루인 방첩사 마저 해체된다면 군에 침투하는 간첩은 누가 막을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요즘 간첩이 어디 있냐'는 무지몽매한 인식은 지양해야 한다. 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지휘관이 밉다고 부대를 해체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