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요리 이수자 김도섭 한국의집 셰프 인터뷰
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600년을 이어온 조선의 궁중요리 역사가 벼랑 끝에 서 있다. 김도섭 셰프는 그 벼랑 위에서 한 줄기 바람 같은 전통의 맥을 붙들고 선 사람이다. 그의 손끝에는 왕의 밥상을 책임진 숙수(熟手)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숨결은 이제 희미하다. 현존하는 궁중요리 이수자는 고작 스무 명 남짓. 새로운 제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어쩌면 ‘마지막 숙수’로 기록될지 모른다.
막노동판을 떠돌던 소년, 숙수의 脈을 잇다
김도섭 셰프. 한국의집 제공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600년을 이어온 조선의 궁중요리 역사가 벼랑 끝에 서 있다. 김도섭 셰프는 그 벼랑 위에서 한 줄기 바람 같은 전통의 맥을 붙들고 선 사람이다. 그의 손끝에는 왕의 밥상을 책임진 숙수(熟手)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숨결은 이제 희미하다. 현존하는 궁중요리 이수자는 고작 스무 명 남짓. 새로운 제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어쩌면 ‘마지막 숙수’로 기록될지 모른다.
막노동판을 떠돌던 소년, 숙수의 脈을 잇다
한국의집 아카데미 시간 요리를 하는 김도섭 셰프. 한국의집 제공 |
김도섭 셰프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가련한 소년이었다. 청주 외곽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그의 집은 경제적으로 유복한 편은 아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학업을 포기하려 했다. 큰 형의 결단으로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형들과 자취를 해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입학하자마자 결국 학교를 나와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요리를 만났다.
“페인트칠, 천장 석고보드, 용접, 목수, 꽃집 심부름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한식 자격증을 따고 처음으로 ‘이 일이 내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자취하며 끓이던 콩나물국이 어쩌면 시작이었겠죠.”
캐피탈호텔에서 시작해 여러 식당을 거쳐 2003년, 그는 ‘한국의집’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운명을 바꿀 스승 한복려 원장을 만났다. 조선의 마지막 주방상궁 한희순의 맥을 잇는 궁중음식 명인, 한복려 원장에게서 전통의 법도와 정신을 전수받은 김 셰프는 10년의 수련 끝에 2018년, 궁중요리 이수자에 오른다.
“한식은 돈이 안 된다”… 사라져가는 한국의 맛
김도섭 셰프가 만든 전복화양전. 한국의집 제공 |
궁중요리 이수자가 됐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궁중요리를 원하는 이가 더는 없었기 때문이다. 궁중요리 이수자는 스무 명 남짓, 뒤를 잇겠다는 이는 없다.
“아무도 이 일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명예도 돈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는 단지 궁중요리뿐 아니라, 한식 전체의 현실이기도 했다. 도시의 번화가에 새로 문을 여는 식당들은 대부분 일식집과 양식당이다. 파스타는 1만 원이면 싸다고 하지만, 칼국수는 1만 원이 넘으면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는 언제부턴가 스스로 한식을 ‘값싼 음식’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인식의 뿌리는 오래됐다. 1980년대, 외식이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던 시절, 식당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메뉴는 집밥의 연장이었고, 품질이나 서비스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 시절 양식과 일식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믿었다. 한식은 싸구려라고.
“한식을 꺼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힘들고 돈이 안 되니까요. 한식당은 아무나 열 수 있었고, 그만큼 품질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이제는 젊은 셰프들이 한식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한 줄기 불씨, ‘환경’과 ‘변화’에서 답을 찾다
강의를 하고 있는 김도섭 셰프. 한국의집 제공 |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불을 지피고 있다. 그 불이 작더라도 꺼지게 두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김도섭 셰프가 찾은 해법은 ‘환경’에 있다.
“아이들이 좋은 한식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한식을 찾게 됩니다. 학교 같은 곳에서부터 그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는 ‘변화’를 말한다. 폐쇄성에 갇혀서는 한식을 개선할 수 없다. 음식은 문화이기에 진화를 거듭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통에 굴레를 씌우려 한다.
“전통은 과거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왕들도 시대에 따라 궁중요리를 바꿨습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전통 안에 현대를 녹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계승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집에서 시작되는 한식의 미래
한국의집 전경. 한국의집 제공 |
그가 속한 한국의집은 한식의 맥을 잇는 국내 유일의 전문적인 한식 문화 공간이다. 고(古) 조리서를 연구하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한식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레스토랑으로서 역량도 높게 평가받아 올해 블루리본 3개 맛집에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서울미식 100선에 선정됐다.
김도섭 셰프는 한국의집이 더 번창하고, 이 같은 공간이 많아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것 역시 한식의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그는 믿는다.
“한국의집에는 제 인생 스토리가 있습니다. 한국의집이 잘 되는 게 셰프 개인으로서의 소망입니다. 또한 한국의집과 같은 문화공간이 각 도시마다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 곳에서 한식을 체험하고 좋은 경험을 쌓아 한식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선순환이 한식의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