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원장 |
차량용 소음 진동 분석 시스템을 개발하는 A사는 해외 바이어 발굴에 애를 먹었다. 중국과 태국 등에 직원들을 파견해 발품을 팔았지만, 들인 돈이나 시간에 비해 성과가 저조했다.
A사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인공지능(AI)으로 우리 기술이 필요한 파트너사를 발굴해준다고 해서 의뢰했는데, 석 달 만에 25개사를 추천해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그중 2건의 거래를 성사시켜 실제 납품에까지 성공했다.
이식 KISTI 원장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AI가 중매쟁이처럼 '최적의 기술사업화 파트너'를 매칭해주는 시대"라며 "KISTI가 보유한 약 1900만건의 기업 정보 데이터를 AI로 분석한 뒤 정부출연연구소 등에 잠자고 있는 공공 연구개발(R&D) 성과와 짝지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 해 35조원에 달하는 정부 R&D 예산을 통해 나온 결과물들을 '논문'으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국내 산업과 사회 전반의 자산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플랫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ISTI는 이달 '아폴로(Apollo)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원장은 "아폴로"라는 이름은 'AI 기반 국가 R&D 사업화 유망성 탐색 플랫폼(AI Platform for Opportunities, Linking, Lab-to-Market, and Orchestration in national R&D)'의 앞 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공공 R&D 투자 35조원 시대에 과학적 의사결정을 위한 AI 도구"라고 설명했다.
아폴로는 '스택형 AI' 구조다. 쉽게 말해 여러 AI를 종합한 시스템이다. 이 원장은 "아폴로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기술 거래의 특성을 뽑아내고 순위를 매기는 AI, 그래프신경망(GNN)으로 기술사업화 사례들을 학습하는 AI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LLM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AI를, GNN은 비정형 데이터를 그래프 형태로 분석하는 AI를 뜻한다. 아폴로는 이 같은 분석 결과를 KISTI가 보유한 데이터베이스(DB)와 연계해 새로운 결과를 내놓는다. KISTI 데이터베이스에는 기업 정보 데이터 1900만건과 시장·산업, 기술·제품, 논문, 특허 등 4471만건이 저장돼 있다. 국내 최대 기술사업화 통합 데이터베이스다.
이 원장은 "아폴로는 단순 검색을 넘어 연구 성과와 기업 수요를 AI가 읽고 연결하는 엔진"이라며 "예를 들어 기업이 '탄소중립형 배터리 소재'란 키워드를 주면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연구성과를 매칭하고 적용 가능한 산업 분야, 최신 글로벌 트렌드까지 제공한다"고 말했다.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가 어떤 기업에 유용할지, 이를 시장에 출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KISTI는 연말까지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 등 기술사업화 지원 기관을 대상으로 아폴로를 시범 운영한 뒤 내년 상반기 중 대국민 정식 운영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내년 하반기 이를 고도화하는 계획도 세워놨다. 이 원장은 "정식 운영을 1.0이라 하면 다음 단계인 2.0에서는 산업별 활용 시나리오 확장과 매칭 알고리즘 고도화에 들어간다. 단순히 공공 R&D 데이터와 기업을 연결하는 것에서 나아가 다양한 사업화 전략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3.0 단계에서는 연구 성과가 기업의 사업화 성과로 이어져 투자 유치와 글로벌 진출로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혁신 기조를 기반으로 아폴로가 본격 가동된다면 한국의 공공 R&D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관심도 뜨겁다. 있는지도 몰랐던 훌륭한 논문과 아이디어들이 빛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실제 사업화로 이어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 덕분이다. 내년도 정부 R&D 예산은 35조3000억원으로 약 5조7000억원(19.3%) 늘었다. 이 원장은 "공공 R&D 예산이 늘수록 성과가 산업과 사회로 흘러야 한다"며 "KISTI가 성과가 흐르도록 하는 '혁신 도르래'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KISTI는 슈퍼컴퓨터를 운영하는 기관으로 유명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국가 과학기술 정보 전문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1962년 설립돼 과학기술과 관련 산업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분석·관리해왔다.
[고재원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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