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도별 차주 가계대출 연체 추이/그래픽=윤선정 |
이재명 대통령이 "어려운 사람 대출 이자가 더 비싸다"며 금리 역설을 경고하고 나선 가운데, 저신용자에 대한 금리 인하 정책은 금융기관의 손실을 키워 오히려 서민금융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한국은행을 통해 제출받은 '신용도별 차주 가계대출 연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저신용자 차주수는 2022년 1분기 159만명에서 2025년 2분기 186만명으로 약 17% 증가했으나, 이중 연체된 저신용자 차주수는 같은 기간 35만명에서 50만명으로 약 45% 급증했다.
반면 중·고신용자 중 연체차주 수는 같은 기간 정체된 상태로, 저신용층 차주 중심의 부실 리스크가 구조화되는 양상이다.
신용도별 차주 가계대출 연체율/그래픽=윤선정 |
'신용도별 가계대출 연체율' 역시 중·고신용자는 0%대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저신용자의 경우 2021년 1분기 16.4%에서 2025년 2분기 23.8%로 7%p 넘게 늘었다.
연체액 추이도 마찬가지다. '신용도별 차주 가계대출 연체 현황'을 살펴보면 같은 기간 고신용자는 연체 규모가 조 단위 기준 0으로 표시될 만큼 미미한 수준을 유지했으며, 중신용자는 두 차례(연체액 1000억원)를 제외하곤 연체액 0원대를 유지했다. 반면 저신용자는 2021년 1분기 10조3000억원에서 2023년 14조원을 돌파한 뒤 2025년 1분기 18조1000억원, 2분기 17조7000억원으로 수직상승 추세다.
신용도별 차주 가계대출 연체 현황/그래픽=윤선정 |
경기 둔화와 자영업·소상공인의 위기 등으로 저신용군에서 부실이 구조화돼 잔액 감소 없이 연체가 불어나 금융사의 관리 난이도가 상승하는 양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신용자 연체율이 지난 4년간 7%p 가까이 상승한 것은 단순히 금리 부담 때문이 아니라 소득 불안정, 일자리 부족, 대부업 의존 심화 등 복합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이라고 질타하자, 금융권은 저신용자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연 15.9%에 달하는 일부 서민대출 상품의 최초 금리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중은행도 저신용자 등 서민·취약계층 금리 우대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포용금융 확대 차원에서 외부 신용등급(CB) 7등급 이하 저신용등급 신규고객에게 0.3%p 금리인하를 올 4분기 중 새로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성실 상환 고객 중 은행자체신용등급(CSS) 4~7등급에게는 0.4%p, 8등급 이하에게는 1.5%p 금리를 각각 인하하기로 했다.
대출금리 상승시 고신용 차주 1인당 연간 이자부담 증가 규모/그래픽=김지영 |
한국은행은 이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고신용자의 금리를 0.1%p 올릴 경우(1인당 연 11만원 이자 더 부담), 저신용자의 금리는 1.9%p 낮출 수 있다고 추산했다. 다만 신용도가 높은 차주가 모두 고소득층이 아니며, 소득은 높지만 신용이 낮은 차주도 있단 점에서 고신용자 금리 인상이 저소득자의 이익 증가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은행의 충당금·자본비율을 높여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대출금리 상향 압력을 키울 수 있다.
신용도 및 소득수준별 가계대출 잔액/그래픽=최헌정 |
올 2분기말 저신용자(186만명)의 연체액은 17조7000억원으로, 1인당 평균 952만원에 달했다. 여기에서 금리를 1.9%p 인하하면 연간 약 77만원, 월 6만원가량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데, 연체액 규모와 차주의 상환능력을 감안할 때 연체를 정상화하기엔 부족한 수준이다. 오히려 금리만 낮추면 상환 유인이 약화돼 연체가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
당장 이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주문한 정책서민금융조차 연체율이 심각한 상태로 나타났다. 불법사금융예방대출(옛 소액생계비대출)의 연체율은 2023년 말 11.7%에서 올해 8월 35.7%로 24%p 급등했다. 최저신용자를 지원하는 정책상품인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은 2023년 말 21.3%에서 올해 8월 25.8%로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신용자 금리를 무리하게 낮추면 궁극적으로 금융사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승인 요건을 강화하거나 한도 축소에 나설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한도나 금리가 정해지고 은행들의 리스크관리나 정책이 결정된다"며 "신용체계가 무너지면 리스크 관리나 부실 대처가 '깜깜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저신용자 대출은 위험 가중치와 손실 충당금 부담이 높아 단순한 '이자 이전' 형태로는 실효성이 낮다"며 "저신용자 금리 인하 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금융의 기본 원리를 흔드는 처방"이라고 했다.
이어 "결국 금융기관의 손실이 커지고 이는 다시 서민금융 축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며 "금리보다 중요한 것은 연체율 관리와 신용 회복 지원이다. 단기 포퓰리즘보다 구조적 복지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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