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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칩이 멈췄다" 美·中 동시 봉쇄 데이터센터 공급망 흔들…기술 아닌 정치 '신냉전' [인더AI]

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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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칩이 멈췄다" 美·中 동시 봉쇄 데이터센터 공급망 흔들…기술 아닌 정치 '신냉전' [인더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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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중국 정부가 최근 주요 항만을 중심으로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수입에 대한 전면적인 단속에 나섰다. 단순한 통상 절차 검사가 아니라,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응하는 ‘거꾸로 된 수입 통제’ 조치로, 베이징이 AI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내부 질서 정비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9일(현지시간) 외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최근 세관 및 공안 당국과 협력해 전국 주요 항구에 특별 단속반을 배치했다. 이들은 데이터센터용 서버 하드웨어와 첨단 반도체의 통관 절차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있으며, 초점은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위해 설계한 H20과 RTX 6000D 모델에 맞춰져 있다. 두 제품은 지난해 미국이 AI 반도체 수출 통제 범위를 확대한 뒤 엔비디아가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스펙을 조정해 출시한 모델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중국 내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이 이 칩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 9월 중순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 등 대형 플랫폼 기업에 H20 신규 주문을 중단하라는 구두 지침을 내렸고, 최근에는 통관 단계에서 물리적으로 칩 반입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수입을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데이터센터에서 사용 중인 장비의 출처와 모델명까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FT는 중국 세관은 밀수나 우회 수입 경로를 통한 미국산 칩 유입을 막는 동시에, 이미 반입된 제품의 최종 사용처를 추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제품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제조된 첨단 반도체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세관 검사는 데이터센터용 GPU를 비롯해 고대역폭 메모리(HBM), 네트워크 가속기, 서버 보드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단속이 아니라 중국이 기술 자립을 위한 ‘자체 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단속이 회사의 중국 내 사업에 중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통제 이후에도 중국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합법적 출구’로 설계된 제품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이 칩의 통관까지 제한하면서, 사실상 엔비디아의 대중(對中) 공급망은 봉쇄된 상태다.

이로 인해 중국 내 AI 데이터센터 생태계 전반에 혼란이 예상된다. 엔비디아 칩을 대체할 국산 AI 가속기 개발은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기술적 병목이 심각하다.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 공급은 대부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 내 생산 라인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도 SMIC가 주도하고 있으나, 7나노 이하 공정의 수율이 불안정해 고성능 AI 칩 생산에는 제약이 많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데이터센터용 GPU 수급이 급격히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중국 내에서는 엔비디아의 기존 모델 A100, H100 등을 재활용하거나 회수해 다시 조립하는 ‘그레이 마켓(비공식 시장)’이 성행해 왔다. FT에 따르면 미국의 규제가 강화된 이후 지난 3개월 동안 약 10억 달러 규모의 고성능 GPU가 중간 유통망을 통해 중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번 세관 단속으로 이 비공식 공급망도 차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항만 당국은 밀수·재조립 GPU 물량을 조사 중이며, 일부 리퍼비시 공장에서는 이미 작업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단속은 중국 정부의 기술 안보 전략과 맞닿아 있다. 최근 베이징은 ‘AI 반도체의 국산화’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주권화’를 강조하고 있다. 즉, 미국산 칩을 통한 AI 학습 인프라 구축을 중단시키고, 자국 칩 생태계 중심으로 계산 자원을 재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분간 기술 효율을 희생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AI 모델 훈련에 필요한 연산 자원이 부족해지면 중국 내 AI 스타트업들의 성장 속도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미 상업화 단계에 진입한 일부 기업들은 연산 비용 급등으로 운영 차질을 겪고 있다.

결국 이번 단속은 중국이 AI 반도체를 둘러싼 전략적 주도권을 다시 쥐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울 전망이다. 미국이 수출을 통제하고, 중국이 수입을 걸러내는 상황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기술적 논리보다 정치적 판단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칩은 이제 양국 모두의 규제망 안에 갇혔고, AI 연산력은 점점 더 ‘국가 단위의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다.



◆ 미 상원, 대중 AI 칩 수출 제한 법안 통과…‘계산력 봉쇄’ 전면전 돌입

미국 상원이 10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용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AI 기술을 둘러싼 미·중 간의 봉쇄전이 한층 심화됐다. 이 법안은 엔비디아, AMD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연산 모듈을 공급할 때 반드시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 상무부의 행정명령 수준을 넘어, 입법 차원에서 AI 칩 통제를 제도화한 첫 사례다. 법안은 ‘국가안보와 첨단 연산력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대규모 AI 모델 훈련 능력을 제한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 특히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모델 H20, L20, L2 칩을 명시적으로 규제 대상으로 포함해, ‘제한된 사양이라도 AI 칩은 수출 불가’라는 원칙을 제도화했다.

상원 표결에서 이 법안은 초당적 합의로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민감 기술 유출 방지’를, 공화당 의원들은 ‘중국의 AI 군사화 차단’을 각각 근거로 찬성표를 던졌다. 상원은 법안 통과 직후 별도의 부속 결의안을 통해 상무부가 엔비디아, AMD,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대해 수출 기록 제출 및 사전 보고 의무를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조치다. 엔비디아는 이미 지난해부터 중국 시장 매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동남아시아, 중동, 인도 등으로 판매선을 다변화해 왔지만, 이번 입법으로 중국향 제품 라인업 자체를 중단할 가능성이 커졌다. AMD 역시 AI 가속기 MI300 시리즈의 중국 버전 개발을 중단한 상태이며, 인텔도 차세대 가우디 칩의 대중 수출 계획을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은 이번 법안을 ‘AI 칩 봉쇄의 완결판’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부터 행정 명령으로 시행해 온 수출 통제 조치(Export Control)를 의회의 법적 근거로 옮겨옴으로써, 향후 행정부 교체와 무관하게 장기적 규제 체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이 법안은 AI를 국가안보의 일부로 명문화한 사건이라며 군사력보다 계산력이 안보를 결정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법안은 미국 내부에서도 산업적 파급력이 크다. 엔비디아와 AMD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전체 매출의 약 25~30%를 벌어들이고 있는데, 이 수출 통제로 단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의회는 이를 ‘안보적 손실 보전’으로 간주하고 국가 차원의 AI 인프라 확충 예산을 별도 편성하기로 했다. 동시에 국방부와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를 중심으로 ‘국산 GPU 공급망 구축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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