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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부패 경찰·독재 얽힌 캄보디아… 올해 한국인 330명 납치 신고

조선일보 김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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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부패 경찰·독재 얽힌 캄보디아… 올해 한국인 330명 납치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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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기 무서운 캄보디아]
한국인 노린 흉악 범죄 급증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50대 한국인 남성을 납치한 중국인 4명과 캄보디아인 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캄보디아 경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50대 한국인 남성을 납치한 중국인 4명과 캄보디아인 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캄보디아 경찰


20대 취업 준비생 김모씨는 이번 추석 연휴에 캄보디아를 여행하려고 현지 숙소를 예약했다가 결국 취소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노린 납치·감금·살인 등 강력 범죄가 잇따른다는 소식에 여행 계획을 접은 것이다. 김씨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앙코르와트를 가보려 했는데 최근 캄보디아 사건 소식이 흉흉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앙코르와트 같은 문화유산 탐방과 해변 휴양지로 각광받던 캄보디아가 ‘여행 가기 무서운 나라’로 변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인을 상대로 한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김씨처럼 캄보디아 여행을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0일 오후 조현 외교부 장관은 쿠언 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캄보디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10만668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만7223명과 비교해 약 9% 줄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2022년부터 작년까지 캄보디아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꾸준히 증가하다가 올 들어 상황이 반전했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한국인 캄보디아 관광객이 줄어든 주요 원인으로는 현지 강력 범죄가 꼽힌다. 외교부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021년 4건, 2022년 1건, 2023년 17건이었던 캄보디아 납치 신고 건수가 지난해 220건으로 급증했고 올 들어선 지난 8월까지 330건으로 작년 건수를 넘어섰다. 캄보디아를 찾았다가 납치됐다는 신고가 2~3년 사이 수십 배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 7월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난 20대 대학생 A씨가 8월 8일 현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로 떠난 지 일주일쯤 됐을 무렵 A씨 가족들은 조선족 말투를 쓰는 한 남성에게서 “A씨가 캄보디아에서 사고를 쳐 감금됐다. 5000만원을 보내주면 풀어주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나흘 후 이 남성과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결국 A씨는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문에 따른 심장마비가 사인이었다. A씨 시신이 발견된 곳은 일명 ‘범죄 단지’라 불리는 곳 근처로 한국인 대상 취업 사기나 감금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21일에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한 카페를 나서던 50대 한국인이 중국인 4명, 캄보디아인 1명에게 납치돼 고문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무렵 5박 6일 일정으로 프놈펜을 찾은 40대 직장인도 가족과 연락이 두절됐다가 최근 혼수상태로 발견됐다.


주로 한국에서 취업을 위해 캄보디아를 찾은 20·30대가 현지 강력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등 국제 사기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로 몰려들면서 흉악 범죄가 늘고 있다”며 “‘별다른 기술 없이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취업 광고를 보고 건너간 한국 젊은이들이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면접차 캄보디아를 찾았다가 폭력 조직에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당한 채 강제로 보이스피싱 조직원 일을 하게 되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게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외교부는 지난달 프놈펜에 대해 여행 경보 2단계(여행 자제)를, 시아누크빌 등지에 대해 특별 여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캄보디아 교민들은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 대상 범죄도 많다”고 말한다. 프놈펜에서 20년 넘게 거주 중인 한 교민은 “몇 달 전까지 시아누크빌에서 한국인이 최소 한 달에 한 명 이상 약물 과다로 사망했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활동하던 한국인이 중국인 총책과 사이가 틀어지거나 채무 관계가 생기면 이런 일이 발생하곤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교민은 “교민 사회 내에서도 현지 범죄가 알려지면 관광 수입이 줄어드니까 입을 다물자는 쪽과 한국 관광객 안전을 위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캄보디아가 최근 들어 강력 범죄의 온상이 된 것은 중국과 라오스, 미얀마 등에서 주로 활동해온 강력 범죄 조직원들이 해당국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자 캄보디아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는 오랜 기간 지속된 독재 체제, 경찰 내부 부패, 부족한 경찰 인력 등으로 강력 범죄 예방이나 수사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선 “캄보디아 공무원들이 중국 현지 조직원들의 범죄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돈다고 한다.

[김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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