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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후 자살한 209명…유서에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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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후 자살한 209명…유서에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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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망자 유서 분석 결과>
살해 후 자살 유서에 '돈' 언급 잦아
'분노' '증오' 등 부정적 감정 표출도
경제적 어려움, 돌봄 부담 등이 원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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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자살 사망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가족 관련 명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가족, 지인 등을 살해한 후 자살한 이들은 '돈'에 관한 언급도 자주 했다.

최근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인지과학과 연구팀은 2013∼2020년 경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살해 후 자살 사망자’와 ‘그 외 자살 사망자(단독 자살, 동반 자살)’의 특성을 분석한 ‘유서 분석을 통한 살해 후 자살의 특성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 사망 416건 중 유서 작성자 209명(전체 215건 중 내용 식별 불가 등 6건 제외)과 유서를 남긴 그 외 자살 사망자 중 성향점수매칭을 통해 선별된 418명을 대상으로 유서 내용을 자연어 처리로 분석했다.

그 결과 살해 후 자살 사망자 유서에서는 총 7,015개 명사가 확인됐다.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엄마, 어머니, 어머님'으로 246회(3.5%)였고 '아빠, 아버지'가 149회(2.1%)로 그 뒤를 이었다. 그외 자살 사망자 유서에서도 총 1만3,673개 명사 중 '엄마, 어머니, 어머님'(522회, 3.8%), '아빠, 아버지'(414회, 3%)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여기서 엄마, 아빠는 자살 사망자 본인의 부모를 향한 메시지뿐 아니라 유서 작성자 자신을 부모로 지칭한 표현까지 모두 포함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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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다음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명사는 두 집단 간 차이가 있었다. 살해 후 자살 사망자 유서에서는 엄마, 아빠에 이어 '돈'(1.7%)이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됐다. 반면 그 외 자살자 유서에서는 부모 외에 '사람'(1.7%) '아들'(1.6%)이 주로 등장했고, '돈'은 1.2%로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유서에 나타난 감정을 분류해 보면, 살해 후 자살 사망자는 ‘분노’, ‘증오’ 같은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높았고, 그 외 자살 사망자는 ‘배려’, ‘신뢰’, ‘사랑’ 같은 감정이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이 충동적인 감정 폭발과 관련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감정 폭발이 가정 내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한다”고 진단했다.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 사망자만을 대상으로 가해자·피해자 관계별 특성도 분석했다. 자녀를 대상으로 한 경우는 30~40대 부모가 경제적 부담이나 자녀의 건강 문제를 주된 이유로 들었으며, 부모를 대상으로 한 경우는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돌봄 부담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나 애인을 살해한 후 자살하는 경우는 50대 이상에서 주로 발생하며 배우자의 부정이나 관계 갈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경제적 부담과 돌봄 스트레스, 가정 내 갈등을 경감할 수 있는 정책적·경제적 지원과 심리 상담, 간병 서비스 확대, 가정 내 의사소통 기술을 다루는 교육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며 “살해 후 자살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지지망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