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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철강 관세 50%’ 인상에 한국 비상…‘탄소 장벽’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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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철강 관세 50%’ 인상에 한국 비상…‘탄소 장벽’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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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8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이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한 무관세 쿼터(할당량)를 축소하고 품목 관세를 25%에서 50%로 높일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 철강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철강업계는 해외 현지 제철소 운영과 공급망 다각화 등 대책 마련에 나섰고,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할당량 협상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7일(현지시각)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수입제한 조치)를 대체할 새로운 저율관세할당(TRQ)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의 연간 수입 철강 할당량을 지난해 세이프가드 총량에 견줘 47% 줄인 1830만톤으로 축소하는 것이 골자다. 할당량을 넘어서는 수입 제품에 대해 적용했던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상향 조정하고 ‘조강’(melt and pour) 기준을 도입해 모든 수입 철강재의 조강국가 증빙 의무를 지우는 내용도 담겼다. 값싼 중국산 철강이 제3국에서 최소한의 가공을 거쳐 원산지를 세탁한 뒤 유럽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다. 신규 철강 규제 조치는 입법 절차를 거쳐 현행 유럽연합 세이프가드 조치의 만료 시점인 2026년 6월말께 회원국 투표를 거쳐 도입될 예정이다.



앞서 유럽연합은 2018년 수입 철강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처를 2026년까지 8년 기한으로 도입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값싼 중국산 철강 제품이 유럽 시장으로 몰려들자 유럽 내부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운 유럽연합은 탄소 발생량이 많은 철강 산업에 대해서도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화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해 왔다. 유럽 철강 기업들이 친환경을 위해 막대한 돈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동안 중국·인도에서 값싼 철강 제품이 유럽 시장에 유입됐고 유럽 철강 산업계가 고사 위기로 내몰렸다.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유럽연합의 철강 생산이 2014년 9%에서 최근 7%까지 줄었고, 최근 15년 동안 철강 산업 일자리 10만개가 사라졌다고 유럽 철강 산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유럽도 철강 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한국은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국이 유럽연합과 미국에 수출한 철강 제품은 각각 44억8000만 달러(약 6조3000억원)과 43억5000만 달러(약 6조1000억원) 규모로 1,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철강 수출은 올해 들어 미국의 ‘관세 폭탄’ 영향이 본격화 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철강 업계에선 유럽의 철강 무역 장벽이 미국의 관세보다 위협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9일 한겨레에 “미국은 철강 산업이 약하기 때문에 관세를 높여도 한국 입장에서 관세를 부담하더라도 수출량 자체는 유지할 수 있다”며 “유럽에서 내년부터 시행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이번 저율관세할당 조처가 맞물리면 한국의 수출 규모는 상당히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유럽 내로 수입되는 철강 등 고탄소 제품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만큼 비용(관세)을 부과하는 제도다.




미국과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기업들은 유럽과 인도 등 현지에 공장을 운영하고 공급망을 다각화하는 등 분주하게 대책을 찾고 있다. 인도도 지난 4월부터 일부 철강 수입품에 대해 12%의 세이프가드를 적용하는 등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8월 인도 1위 제철기업인 제이에스더블유(JSW)와 연간 조강생산량 600만톤 규모의 제철소를 공동으로 짓기로 합의하고 주요조건 합의서(HOA)를 체결했다. 현대제철은 트럼프 정부가 철강관세 25% 부과를 발표했던 지난 3월 루지애나주에 58억달러(약 8조2000억원)를 투자해 연간 27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제철소를 건립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현대제철은 올해 초 사내에 ‘유럽영업실’을 신설해 유럽지역 공급망 다각화도 검토하고 있다. 폴란드에 공장을 보유한 아주스틸을 지난해 인수한 동국씨엠(동국제강 계열사)은 유럽 생산량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이 미국의 관세 50%에 키맞추기 식으로 대응해 나가면 국내 기업들은 공장 현지화·공급망 다각화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유럽연합과 협의를 통해 무관세 할당량을 최대로 얻어내는데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유럽연합이 “국가별 물량 배분 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해서는 고려하겠다”고 밝힌 것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이유진 수석연구원은 “유럽에 수출하는 한국의 철강 제품은 차량용 강판과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할당량을 많이 받을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산업통상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추후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만나 새로 도입될 예정인 저율관세할당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산업공급망정책관 주재로 10일 ‘민-관 합동 대책 회의’를 열어 철강 산업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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