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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이유’ 있는 오바마 노벨상 수상 비판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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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이유’ 있는 오바마 노벨상 수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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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위원회, 오바마는 ‘대선 공약’만 보고 취임 첫해에 상 줘
선정 과정은 코카콜라 레시피, 미 핵잠(核潛) 배치만큼이나 극비
예측시장 베팅 사이트들의 트럼프 가능성은 3~20%
FT “김대중 대통령 수상 로비는 상당히 정교…트럼프는 노골적”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꾼 트럼프가 상 받을 수 있나” 의견도
노르웨이노벨위원회의 한 직원이 손에 들고 있는 노벨평화상 메달 복제품/로이터 연합뉴스

노르웨이노벨위원회의 한 직원이 손에 들고 있는 노벨평화상 메달 복제품/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줄곧 ‘노벨상’ 타령을 한 사람은 없다. 트럼프는 지난 6월 20일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이스라엘ㆍ이란 관계 등 내가 뭘 해도, 나는 노벨평화상을 못 받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다. 그리고 나에겐 그게 중요하다”고 썼다. 트럼프는 7월엔 노벨평화상을 주는 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재무장관에게 불쑥 전화해 “노벨상을 받고 싶고, 관세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미래예측 베팅 사이트인 폴리마켓에서 9일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6%다. 그나마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트럼프의 가자 평화안 20개항의 1단계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 3.6% 포인트 뛰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반파시스트 운동 '안티파' 관련 원탁회의에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건넨 메모를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반파시스트 운동 '안티파' 관련 원탁회의에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건넨 메모를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내 이름이 오바마였다면, 취임 10초만에 노벨상 받았을 것”

그는 작년 10월 디트로이트 유세에서 “내 이름이 오바마였다면, 대통령 취임 10초만에 노벨상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인 2020년 8월과 9월, 자신이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 간에 외교 관계를 회복하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중재한 업적을 들었다. 이후 모로코와 수단도 이스라엘과 이 협정을 맺었다. 앞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조건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와 시리아도 이 협정에 서명할 수 있다.

사실 트럼프가 오바마 수상(受賞)에 열받을 만도 하다. 버락 오바마는 2009년 1월에 “국제 외교를 강화한 각별한 노력”과 전세계 비핵화를 위한 비전(vision)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오바마는 그해 1월20일에 처음 대통령이 됐다.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마감 및 공적 심사기간은 해당 연도의 1월31일이다. 결국 당시 노벨평화상 위원회(공식명 노르웨이노벨위원회)는 오바마의 대선 공약만 보고, ‘공적’도 없는 그를 선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오바마에 비하면, 트럼프는 지난 6월 “4번, 5번은 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노벨상 사무총장도 오바마 선정 “실수” 인정

실제로 당시 노벨평화상위원회 사무국장이었던 게이르 룬데스타드는 2015년에 낸 회고록 ‘평화의 사무국장(Secretary of Peace)’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상을 받고 나서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오바마에게 상을 줌으로써 우리가 평화 과정에 힘을 보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상을 받는 오바마도 자신이 아직 그 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이루지 않았다고 느꼈다는 점은 우리도 모두 알고 있었다” “심지어 오바마 지지자들도 그 상이 실수(mistake)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위원회는 기대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사무국장은 수상자 최종 투표권을 쥔 5인의 심사위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10일 발표되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결정 과정은 미국의 핵 잠수함 배치 상황, 코카콜라 레시피(recipe)만큼이나 극도로 비밀이 유지된다. 매년 추천된 후보자 명단과 추천인은 50년간 비공개된다. 따라서 룬데스타드가 공개적으로 ‘실수’를 시인하자, 노벨상위원회는 그가 비밀서약을 깼다고 비난했다.

◇노벨평화상 위원들, 로비스트들의 성매매 제안받기도

하지만, 드물게 선정 과정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현재 노벨평화상 위원회 부위원장인 아슬레 토예(Asle Tojeㆍ국제정치학자, 외교평론가)는 2018년 한 외국 지도자의 로비스트가 자신을 디즈니월드에 데려간 적이 있고, 또 다른 로비스트는 성매매 장소 방문을 제안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영국의 타임스는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나중에,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관계자와 언론인들을 상대로 한 집중적이고 정교한 영향력 캠페인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를 위한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노력은 전례(前例)가 없었다. 트럼프의 중동 평화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는 노르웨이 평화상 위원회가 트럼프의 외교적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국에 대한 큰 모욕”이 될 것이라고 했고,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여러 경로로 유럽 지도자들에게 트럼프의 수상 필요성을 압박했다.

노르웨이 일간지 아프텐포스텐의 외교정책 분석가인 크리스토퍼 로네베르그는 “트럼프가 이 상을 받지 못하면, 노르웨이에 추가 관세(현재 15%)을 부과할지, 노르웨이 기업과의 계약을 취소할지 알 수 없다. 1년 전만 해도 미국 대통령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국제문제연구소의 연구 디렉터인 할바르드 레이라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전에도 수상을 위한 캠페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더 은밀했다”며 김대중 대통령 수상을 위한 “상당히 정교한 캠페인”을 예로 들었다.

◇트럼프, 1월31일 마감 전에 추천 접수됐다

노벨평화상 위원회의 후보 심사 대상에 오르려면 그해 1월31일까지 추천이 완료돼야 한다. 각국 정상과 정부 고위 관료, 의원, 노벨위원회가 인정하는 국제기구와 국제법ㆍ국제정치학자 등이 추천할 수 있다.

올해 트럼프의 노벨상 추천은 미 하원의원 5명과 파키스탄 정부, 캄보디아 정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이 했지만 대부분 마감일을 한참 넘긴 6~8월에 이뤄졌다.

그러나 작년 12월11일, 클로디아 테니 미 하원의원(공화ㆍ뉴욕)은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공적(功績)으로, 트럼프와 네타냐후 등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로선 어쨌든 후보에 오르는 ‘요건’은 갖춘 셈이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평화상 후보로 접수된 건수는 모두 338건으로, 이 중 개인이 224명, 기구가 94곳이라고 밝혔다.

◇올해 수상자 결정하는 5인

올해 노벨평화상 위원회를 구성하는 5인은 모두 전직 의원으로,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정했다. 위원회는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인 41세의 요르겐 왓네 프리드네스가 이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이지만, 인권ㆍ시민 단체에서 경력을 쌓았다.

The Norwegian Nobel Committee, 2025.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5인과 사무국장. 오른쪽 끝이 요르겐 왓네 프리드네스 위원장, 그 옆이 아슬레 토예 부위원장./노벨위원회

The Norwegian Nobel Committee, 2025.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5인과 사무국장. 오른쪽 끝이 요르겐 왓네 프리드네스 위원장, 그 옆이 아슬레 토예 부위원장./노벨위원회


반면에, 부위원장 아슬레 토예(51세)는 보수 성향이다. 그는 트럼프의 두번째 취임식에 참석했고 “엄청난 파티”라고 평했다. 나머지 3명 중에서 한 명은 노동당 출신이자 대규모 인도주의 단체 대표로 트럼프의 대외 원조 삭감을 비판했다. 과거 보수당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한 명도 트럼프 1기 때 그를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남겼다.

이들은 1월31일까지 후보 추천을 마감한 뒤 첫번째 회의에서 위원별로 각자 염두에 둔 후보자를 이 명단에 추가할 수 있다. 올해 첫 회의는 2월28일에 있었다. 물론 트럼프가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수상자는 위원회 5인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트럼프의 ‘경쟁’ 후보들

각종 베팅 사이트에서 매긴 트럼프의 승산은 3~20%로 다양하다. 트럼프 외에도, 투옥 중 독살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러시아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 수단의 인도주의 지원 네트워크인 ‘응급대응팀(Emergency Response Rooms), 국제사법재판소(ICJ), 국경없는의사회(MSF), 기자보호위원회(CPJ) 등이 있다.

투옥 중 독살 의혹이 제기된 러시아의 반정부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 그는 독일을 거점으로 푸틴과 러시아의 부패와 인권탄압을 비판하고 있으며, 서방 매체에서 러시아 야권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린다.

투옥 중 독살 의혹이 제기된 러시아의 반정부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 그는 독일을 거점으로 푸틴과 러시아의 부패와 인권탄압을 비판하고 있으며, 서방 매체에서 러시아 야권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린다.


트럼프의 ‘압박’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010년 중국 정부는 당시 노르웨이 외무장관에게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에게 평화상을 주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이 메시지는 노벨위원회에 전달되고 언론에도 유출돼 큰 파문이 일었다. 류샤오보는 그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201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끝내 앉지 못한 의자를 그대로 두고 거행됐다. 노벨위원회의 토르뵤른 야글란 위원장이 빈자리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끝내 앉지 못한 의자를 그대로 두고 거행됐다. 노벨위원회의 토르뵤른 야글란 위원장이 빈자리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럽의 한 외교관은 FT에 미 국방부 명칭을 ‘전쟁부’로 바꾼 트럼프가 평화상을 받으면 “이상한 신호”가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모두 트럼프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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