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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국 맞습니까?” 75년 우방의 배신에도 ‘9月 수출 선방’한 이유는? [비즈360]

헤럴드경제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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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국 맞습니까?” 75년 우방의 배신에도 ‘9月 수출 선방’한 이유는? [비즈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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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출 ‘역대최대’ 659억 달러
‘미국 빼고는’ 모든 지역서 최고치 달성
반도체 22.0% 증가한 166.1억 달러
車수출도 EV·HEV 늘어난 64억 달러
“빠른 관세협상, 상승발판 마련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앞서 올해 초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수입 알루미늄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사인한 뒤 발언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앞서 올해 초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수입 알루미늄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사인한 뒤 발언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요구로 한·미 관세 협상이 답보 상태에 놓인 가운데, 한국의 9월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새로 썼다. 반도체의 압도적 경쟁력과 자동차 수출의 새로운 활로 개척이 성과를 끌어낸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9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7% 증가한 659억5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22년 3월(638억 달러) 이후 3년 6개월 만에 다시 쓰인 기록이자,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다. 수출은 지난 6월 이후 4개월 연속 플러스 흐름을 이어갔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가 올해는 10월로 밀리면서 조업일수가 4일 늘어난 영향이 있었지만, 이를 감안해도 일평균 수출액은 27억5000만 달러로 집계돼 역대 9월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품목별로는 반도체가 전년 동기 대비 22.0% 증가한 166억1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인공지능(AI) 서버용 고부가 메모리(HBM·DDR5) 수요가 집중되면서 가격 흐름이 안정세를 보인 덕분이다. 자동차 수출도 친환경차(EV·HEV)와 내연기관차가 고르게 성장하며 64억 달러를 올려 9월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특히 중고차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3배나 늘며 성장세를 더했다.

일반기계(10.3%), 석유제품(3.7%), 선박(21.9%), 자동차부품(6.0%), 디스플레이(0.9%), 바이오헬스(35.8%), 섬유(7.1%), 가전(12.3%) 등 주요 품목이 동반 상승했고, 농수산식품(11억7000만 달러), 화장품(11억7000만 달러), 전기기기(14억6000만 달러)는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지역별로는 미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수출이 늘었다. 대미 수출은 철강(-15%)과 자동차(-2%) 관세 여파로 1.4% 감소한 102억7000만 달러에 그쳤다. 반면 대중국 수출은 116억8000만 달러(0.5%↑), 아세안(17.8%↑), EU(19.3%↑), 중남미(34.0%↑), 일본(3.2%↑), 중동(17.5%↑), 인도(17.5%↑), CIS(54.3%↑) 등 전방위적으로 호조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지난달 무역수지는 95억6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 2018년 9월 이후 7년 만에 최대 흑자를 달성했다.

수출 대기중인 컨테이너선 [헤럴드DB]

수출 대기중인 컨테이너선 [헤럴드DB]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의 관세 조치로 대미 수출이 위축되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시장을 신속히 다변화하며 9월 사상 최대 실적을 만들어냈다”며 “다만 관세 협상 등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경각심을 갖고 기민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관세 협상 지연이다. 이미 유럽연합(EU)과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을 마무리하고 관세 인하 혜택을 확보했다.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여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수출을 떠받치고 있지만 미국 시장 입지가 좁아진다면 전체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협상 타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여론도 미국 요구에 싸늘하다. 리얼미터가 지난 1~2일 전국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500억 달러 선불 지급 요구가 부당하다’는 응답은 80.1%에 달했다. 이 가운데 ‘매우 부당하다’는 응답이 61.4%, ‘대체로 부당하다’는 18.7%였다. 반면 ‘수용 가능하다’는 응답은 12.4%(매우 5.1%·대체로 7.3%)에 그쳤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84.0%), 광주·전남·전북(84.8%) 등 지역에서 부당하다는 응답이 두드러졌고, 연령별로는 전 세대에서 60% 이상이 부당하다고 답했다. 특히 50대에서는 88.5%가 ‘부당하다’고 응답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1950년부터 우리나라와 우방관계를 맺어오면서, 국민을 대상으로 선호도가 높았던 미국에 대해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 다수의 온라인 공론장에서는 관세협상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배신감을 직접 표출하거나 동맹으로서 한미관계에 회의감을 터뜨리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협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을 향한 국내 여론의 반감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내에서도 이같은 현상에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는 이같은 현상을 “(트럼프 행정부가) 매우 서투른 표현”을 사용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관세 합의를 설득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투자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라고 평가했다든지,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이 사용한 ‘백지수표’ 등 표현에서 상대국 국민들이 크게 부정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포브스는 또한 미국 정부가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정부 당국에서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317명을 포함해 450명을 구금한 사태도 관세 협상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고 봤다.

다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강경 대응’이나 ‘전면 거부’보다는 조건부 협상과 국제 공조를 통한 절충이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무엇보다 자동차와 반도체는 관세 문제가 조속히 풀리지 않으면 경쟁력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 일본이 서둘러 미국과 협상을 타결해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춘 반면, 한국은 여전히 높은 관세 장벽에 막혀 가격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역시 미국이 ‘자국 내 생산분만 면세’ 원칙을 고수할 경우 해외 생산분에는 관세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이 두 축에서 빠르게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한국 수출의 체급을 지키는 관건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