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쿠바 아바나의 항구에서 포획한 청새치를 둘러싸고 동료들과 기념촬영 중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왼쪽에서 셋째). 위키미디어 커먼스 |
어업 경력 최악의 슬럼프에 빠진 어부 산티아고는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지 여든 날하고도 닷새째 되는 날 출항한 바다에서 길이 5.5미터, 무게 700킬로그램의 초거대 청새치와 맞닥뜨린다. 그는 고독단신 맨몸으로 사흘간 사투 끝에 청새치를 포획하지만, 이내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떼의 습격은 피할 수 없었다. 밤낮으로 이어진 도합 다섯 차례 방어전을 덤으로 치른 뒤, 노인은 살코기는 전부 내주고 청새치의 골격만을 간수하여 허덕지덕 귀환한다. ‘노인’(the old man)과 ‘바다’(the sea)라는 보통명사를 덤덤하게 결합한 제목의 꼴만큼이나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단출하다. 평생 시대는 물론 제 심신과도 불화했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말년 이 원초적 서사로 말미암아 오늘날 세간에 알려진 영광의 상당 부분을 구축하였다.
한국에서는 ‘노인과 바다’의 정조를 대변하는 작중 명구로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말이 인용되곤 한다. 함의는 붙이기 나름이겠으나, 그 최소공배수를 추정하자면 어떤 난폭한 비바람이라고 할지라도 기껏해야 파도를 부추기는 데 그칠 뿐 대양 깊은 곳에 가닿지는 못할지니, 마치 바다와 같이 삶의 풍파 앞에 의연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것은 과연 바다 한가운데서 천재일우의 기회(청새치)든 절체절명의 위협(상어 떼)이든 당면한 현실을 제 몸으로 들이받아 밀고 당기며 싸우길 마다치 않았던 산티아고의 기개와도 통하는 면이 없지 않다. 악천후에 동요하지 않으며 지구전을 각오하는 마음가짐의 관점에서 ‘노인’과 ‘바다’는 상호 동급이다.
그러나 기실 이 중편소설 어디에도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문장은 쓰여 있지 않다. 1952년 출간된 원어 판본을 뒤져봐도 비슷한 구절은커녕 ‘비’(rain)라는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 누가 언제 무슨 생각으로 거짓 출처를 날조했는지는 추적하기란 쉽지 않은데, 아무튼 그 덕분에 뒤틀린 인용구를 그대로 활용한 후대의 모든 이들은 빠짐없이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았거나, 설사 읽었다 하더라도 뭔가 단단히 착각한 것 아니느냐는 난처한 의혹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전 해병대 사령관 김계환도 그러한 형편에 놓인 인물 가운데 하나다. 알다시피 그는 순직 해병 수사 외압 사건의 연결망 중심부에서 부지런히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부와 소통하며 조직적인 은폐 작업에 발맞춰 처신했던 인사다. 이 사건은 2023년 여름 상관의 지시를 받아 변변한 안전 장비 없이 호우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된 말단 장병이 하천 급류에 휩쓸려 명을 달리한 사망 사고와, 이 사고의 배후에서 작동한 지휘 계통의 책임을 밝히고자 전개된 수사 절차가 별안간 권력에 의하여 중단되고 뒤집힌 방해 공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회적 참사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사고를 사건으로 키운 사태에 속한다. 당시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김계환은 사태의 시발점이 된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직접 전하였는데, 줄곧 제 행적을 부인하다가 정권이 함락되어 교체당한 이후에야 진술을 바꿨다.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가운데)이 지난 7월22일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김계환은 사령관 재임 기간 여러 차례 지휘서신을 내렸는데, 특히 2024년 4월에는 바깥세상의 정쟁(政爭)에 휘둘리지 말고 군강(軍綱)을 확립할 것을 전군에 당부하였다. 마침 야당이 총선에서 대승하여 집권 세력의 앞날에 비바람이 예보되었던 때다. “격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해병대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시작하는 서신 전문에는 요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의 소중한 전우가 하늘의 별이 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입니까. 고인의 부모님 당부조차 들어드리지 못한 채, 경찰, 공수처, 법원의 결과만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해병대 조직과 구성원에게 아픔과 상처만 있을 뿐입니다. 아니, 결과가 나와도 다시 한번 정쟁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중략)…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다는 제 아무리 굵은 소낙비가 와도 그 누가 돌을 던져도 큰 파문이 일지 않듯이 자신의 중심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라는 메시지입니다.”
소낙비는 이른바 정쟁을 가리키고, 여기서 정쟁이란 고 채수근 해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과 맞닿아 있으니, 비를 맞는 당사자는 해병대가 아니라 외압 및 은폐 사건에 연루된 해병대사령관 본인일 것이다. 위증까지 감수하며 진상 규명에 저항하고 있는 사령관 개인의 투쟁이 이 지휘서신을 매개하여 해병대 조직의 명운이 걸린 시련으로 바꿔치기되고 있으니, 문구의 출처를 호도하고 있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괘씸한 인용이 아닐 수 없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노인과 바다’를 읽는 해석의 스펙트럼은 광대하다. 어부 산티아고의 슬럼프를 노년의 헤밍웨이가 처했던 창작의 슬럼프와 연관 지어 자전적이고 메타적인 예술가의 서사로 읽기도 하고, 온갖 부상과 병력에 시달리며 만신창이로 내몰리다 결국 엽총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우울과 불안의 징후를 발굴하는 정신분석학적 독법 역시 설득력이 있으며, 젠더, 생태주의, 포스트식민주의 같은 최신 담론을 접목한 분석도 흥미롭다. 하지만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거짓 인용구가 얼결에 대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고전문학에 대한 보편적이고 직관적인 감상은 불굴의 인간찬가에서 오는 감동에 있을 것이다. 행운이니 불운이니 인생사에 멋대로 붙인 덧없는 규정을 걷어내고, 그저 무정한 인과의 사슬로 얽힌 세계의 맨얼굴과 대면할 때, 육신 바깥의 외계(外界)에 아무런 통제 권한을 갖지 못하는 인간이 도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의지를 다잡고 몸을 부려 대항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멕시코만류 복판에 떠 있는 산티아고의 조각배로부터 도출되는 비장하고 고요한 결론이다. 이상의 주제의식은 첫 번째 상어의 공습을 물리친 직후 산티아고의 저 유명한 혼잣말에 집약되어 있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는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노인과 바다’, 김욱동 역, 민음사, 104쪽)
박정훈 대령이 지난 7월16일 서울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로 출석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번역가 김욱동은 이 대목에서 패배(defeat)를 정신적인 것으로, 파멸(destroy)을 물질적인 것으로 구분하여 해설한다. 산티아고는 물질적·육체적으로 파괴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패배하지 않는 헤밍웨이적 영웅상을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가 1954년 ‘노인과 바다’에 남긴 헌사,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실 세계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에서 말하는 ‘선한 싸움’이란 곧 육체의 파멸을 각오하면서도 정신의 패배는 결사코 거부하는 산티아고의 결기를 가리킨다는 것이다.(같은 책, 153∼156쪽)
김계환이 ‘노인과 바다’를 읽었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어느 대목에 감읍하였는지 또한 알 길이 없는데, 혹여 그가 산티아고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곤란한 일이다. 파멸당할지언정 패배해지 않는, ‘선한 싸움’을 벌이는 존경스러운 인간이라는 구절로부터 연상되는 인간상은 당연하게도,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사 실무 책임자의 직업 윤리와 양심을 관철하였다는 이유로 정권에 의해 보직에서 내쫓겼고, 항명의 죄를 덮어쓴 채 재판정에 서야 했다. 국가적 역량이 총동원된 탄압이자 무엇보다 채 해병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려는 공작이었는데, 이후에 정작 우리가 목도한 것은 권력이 제풀에 좌초하는 광경이었다. 권세가 영원할 것처럼 굴었던 그들의 작당모의는 끝내 한 사람의 죽음을 넘어서지 못한 채 붕괴하였고, 박정훈 대령은 지난 7월 수사단장에 복직했다.
우리 공동체의 짓밟힌 인간성이 2년여 기간 사투 끝에 패배의 수렁에서 생환하는 귀한 실례를 얻은 셈이다. 이 고단한 서사야말로 젊은 해병의 영전에 바칠 만한 것 같다.
박강수의 허언록은?
곡해, 도용, 날조, 과장, 오역 등 비틀린 말의 사정을 추적하는 에세이입니다. ‘잘못 알려진 명언’의 말 못 한 사정을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박강수의 허언록(https://www.hani.co.kr/arti/SERIES/3309?h=s)에서 읽어보세요!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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