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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가는 시골 고향집…은퇴자들이 꿈꾸는 ‘집수리 희망꽃’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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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가는 시골 고향집…은퇴자들이 꿈꾸는 ‘집수리 희망꽃’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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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된 집에서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어르신들은 많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돌봐 줄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노후된 집에서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어르신들은 많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돌봐 줄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상용 | 새미래뉴스 대표·‘희망꽃 피우기’ 정원사



고향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울림을 준다. 그러나 나에게 고향은 포근함보다는 애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만경강 하류 새만금방조제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 그곳에는 남의 농사를 지어 오남매를 키웠던 부모님의 땀과 눈물과 한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45년 된 작은 집이 있다.



어릴 적 그 집은 손바닥만 오두막집이었는데 1979년 어머니와 내가 푼푼이 모은 종잣돈으로 새로 지었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곳을 지키셨다. 나는 종종 고향집을 들러 두루 살펴보고, 고단했던 부모님의 삶을 되새기곤 했다.



얼마 전 지인 가족과 아들 친구들이 이 집을 다녀갔다. “휴양지처럼 고치면 좋겠다”는 말에 가족들도 가세해 분위기가 고조되어 결국 최소의 비용으로, 필요한 곳만 고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시골집 수리는 내게 전혀 낯선 세계였다. 인공지능(AI) 도구와 유튜브를 활용해 시골집 수리에 대한 기초를 이해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으며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했다.



무더운 여름날의 공사는 쉽지 않았다. 계획한 부분을 하고 나면 다른 곳이 문제고 그곳을 하고 나면 계획한 기간과 비용을 넘어서는 일도 생겼다. 나는 단지 작업자들이 조금 더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선풍기와 시원한 음료를 챙기는 작은 역할을 했다. 일하시는 두분과 며칠을 함께 보내며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단순히 돈을 받고 일하는 업자가 아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기 집을 고치는 마음으로 계약에 없던 부분까지 정성껏 손을 봐주셨다.



그분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술자의 장인정신과 다양한 능력을 알게 된 이후 나는 품어온 꿈을 꺼내 놓았다. 그것은 은퇴한 집수리 전문가들이 모여 실비로 독거노인의 집을 맞춤형으로 고쳐드리는 ‘실버 프로젝트’ 중 한가지였다. 두분은 주저 없이 동참을 약속했다. 그 순간 개인의 닦아온 기술이 사회적 연대로 승화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지금 농촌의 현실은 암울하다. 고령화로 독거노인이 증가하고 있으며,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노후된 집에서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어르신들은 많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돌봐 줄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은퇴한 시니어들의 기술과 열정을 조직화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은퇴한 장인들의 열정, 지역사회의 관심, 그리고 기술과 경험을 나누는 협력의 장이 마련된다면 농촌 어르신들의 주거 환경은 놀랍도록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집수리가 아니라 존엄과 안전을 지켜주는 사회적 돌봄이며. 농촌을 살리는 길이다.



이번 집수리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작은 집 한채를 고치는 일이 한 사람의 삶을, 나아가 한 지역의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농촌 어르신들의 삶을 지켜내는 ‘희망꽃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첫발을 내디딘다.



고향은 여전히 애잔하다. 그러나 이제 그 애잔함은 새로운 희망으로 변해야 한다. 낡은 집을 고치는 손길 속에서, 농촌 어르신들의 삶을 지켜내는 연대의 힘을 본다. 이 작은 씨앗이 자라나, 우리 사회 곳곳에 따뜻한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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