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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이어 타이레놀 때리는 트럼프, 반(反)과학적 공격 배경은?

파이낸셜뉴스 홍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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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이어 타이레놀 때리는 트럼프, 반(反)과학적 공격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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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코로나 백신 이어 2기 타이레놀 때리는 트럼프
대형 제약사 공격하면서 지지자 결집, 본인도 자폐성 장애에 관심 많아
자폐성 장애 대책 없는 제도권 의료계 불신
대형 제약사 공격하며 약값 인하 압박
일각 "부모에게 거짓된 희망, 잘못된 죄책감 주고 있어"


지난달 22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약국에서 촬영된 다양한 타이레놀 제품들.AFP연합뉴스

지난달 22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약국에서 촬영된 다양한 타이레놀 제품들.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지난 1기 당시 코로나19 백신이 위험하다고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기 들어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을 공격하면서 그의 발언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지 매체들은 과학에 반하는 그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미국 CNN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임자이자 퇴임 이후 정치 발언을 자제했던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서 열린 행사에서 이례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의 내 후임자가 지속적으로 반증되어 온 특정 약물과 자폐성 장애에 대한 광범위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혼란을 지적한 뒤 "이 모든 것은 진실에 대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백악관에서 미국 제약기업 존슨앤드존슨 산하 '켄뷰'가 생산하는 타이레놀을 언급했다. 그는 타이레놀의 핵심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성 장애인 출산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신한 여성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다면 어쩔 수 없이 복용해야겠지만 조금만 먹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와 켄뷰, 기타 저명한 의학계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반발했다. 트럼프 1기 정부와 조 바이든 정부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대응을 주도했던 폴 프레드릭스 전 팬데믹 대응 사무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환자들은 정치 지도자인 그를 믿는 마음과 전문가의 권고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도 과학적 합의를 무시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표백제 주사를 언급하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했다. 동시에 전문가 반대에도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 치료제로 홍보했다. 아울러 집권 후에는 백신 회의론자들을 중용하고 백신 연구 자금을 삭감하는 등 주류 의학계와 거리를 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5월 5일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하니웰 인터내셔널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마스크는 쓰지 않고 고글만 착용한 채 관계자들과 현장을 둘러보며 마스크를 쓴 한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피닉스로 출발하기 전 공장에서 마스크를 쓸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설이면 그럴 것"이라고 답했으나, 현장에서 마스크를 쓰지는 않았다.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5월 5일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하니웰 인터내셔널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마스크는 쓰지 않고 고글만 착용한 채 관계자들과 현장을 둘러보며 마스크를 쓴 한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피닉스로 출발하기 전 공장에서 마스크를 쓸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설이면 그럴 것"이라고 답했으나, 현장에서 마스크를 쓰지는 않았다.AP뉴시스


현지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 배경에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정치적 포석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대선부터 무분별한 약품 오남용 대신 건강한 식생활을 통해 질병 예방을 추구하자는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HA·마하)' 운동을 벌였다. 코로나19 백신을 불신하는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대형 제약 기업들과 대치 중이다. 지난달 23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접촉한 정치 로비스트 크레이그 스나이더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 세력 구성에 있어서 마하 지지자들, 케네디 지지자들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며 "대형 제약사의 약품이 자폐성 장애와 연관 있다고 주장한 것 자체가 지지자들 사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제도권 의료 전문가에 대한 불만에 관한 것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소 2007년부터 공개적으로 자폐성 장애에 관심이 많았으며, 각종 모금 행사를 주최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난달 22일 자폐성 장애와 타이레놀의 연관성을 언급한 브리핑에서 "나는 자폐성 장애에 관해 항상 매우 강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며 "이런 기회를 20년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역시 지난달 23일 관계자 3명을 인용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폐성 장애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않는 제도권 의료 관리나 전문가들에게 실망했고, 이들을 믿지 않는다"고 전했다.

마지막 이유는 대형 제약업체를 겨냥한 압박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해 대선 때부터 미국의 약품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주장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31일 존슨앤드존슨을 포함해 미국에서 영업하는 17개 글로벌 제약사에 서한을 보냈다. 이어 그는 60일 내로 미국 내 약값을 낮추라고 요구했고, 따르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다.


트럼프 1기 당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근무했던 제롬 아담스 전 공중보건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타이레놀 관련 발언에 대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타이레놀을 피하면 자폐성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약을 먹지 않고 버텼어야 자녀가 자폐성 장애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게 부모들을 어떻게 돕는 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건 거짓된 희망을 주는 것이며, 잘못된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whywani@fnnews.com 홍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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