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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발언 하루 만에 '상고제한법'... 검찰 예규에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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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발언 하루 만에 '상고제한법'... 검찰 예규에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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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뉴시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에서 검찰의 상고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1·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난 사건은 검찰이 아예 상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또 상고하면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고 언급하자 하루 만에 이런 법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이 지난 1일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소한 사건을 2심이 기각했을 경우 대법원 상고를 막는 게 핵심이다. 민주당은 “의원 개인 법안 발의로, 당론으로 논의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내 공감대가 상당히 형성된 모습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또한 “상소를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검찰의 ‘묻지마 상소’ 관행은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를 막겠다며 2018년부터 형사상고심의위원회를 도입해 상고 전 의견을 듣도록 했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다. 2022~2024년 1·2심 전부 무죄가 나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고한 건수는 772건으로 상고율이 8.9%에 달한다. 거의 10건 중 1건꼴이다.

하지만 이 중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되는 사건은 1.2%에 불과하다. 최종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통상 5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피의자는 만신창이가 된다. 그럼에도 검찰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법으로 상고를 금지하는 건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명시하며 3심제를 보장하는 헌법을 법으로 거스르겠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대법원에서 법률적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중대한 사안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야당에서 ‘이재명 구하기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상소 남발을 막는 건 반드시 필요하지만, 검찰 스스로 나서는 게 옳다. 대검찰청 예규를 통해 중대하고 예외적 사안이 아니면 상소를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드는 게 최선의 해법일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무거운 족쇄를 채우기 전에 먼저 움직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