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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84% 투입 시 외환시장 '휘청'...미국에 통화스와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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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84% 투입 시 외환시장 '휘청'...미국에 통화스와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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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억 달러 투자 시 환율 치솟을 수도
통화스와프 거론되나 미국 수용이 관건
"협상에서 관세 효과 상쇄 주장해야"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이 우리나라와 관세 협상에서 외화보유액의 84%에 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 투자를 요구하면서 외환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화보유액 부족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수입 물가가 치솟는 등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과의 통상·관세 협상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15일 외환 당국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한국 외화보유액은 4,163억 달러(약 580조 원)다.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융자 등의 방식이 아닌 직접 투자로 조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화보유액이 크게 줄어들 경우 외환시장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 금융 불안이나 지정학적 충격 발생 시 외화보유액이 많더라도 '심리적 안전판'이 없으면 원화 약세가 급격히 진행될 수 있다"며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급격한 붕괴 가능성은 낮지만, 환율이 단기간 1,500원 이상 치솟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9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외환시장에서) 1년에 조달할 수 있는 (달러) 금액이 200억~300억 달러를 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한미 협상 과정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시장에서는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를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긴다. 한은 관계자는 "얼마 아래면 위험하다는 객관적인 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아직 대미 투자 방식이 정해진 게 없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미국 정부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개설 필요성을 개진하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자국의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오는 일종의 '국가 간 마이너스 통장'이다.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체결될 경우 우리로서는 환율 급변 등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특히 관세 협상을 마무리한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정부가 일본과 비교하면서 우리 정부에 직접 투자 비용을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은 외환 거래에서 무제한 스와프가 가능하고 우리의 통화는 일본 엔화에 비해 기축성 성격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본과 우리를 같이 볼 수 없다고 설득하는 중"이라며 "미 국무장관이나 재무장관은 이해하는데 상무장관이 잘 이해를 못 하고 있어 계속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한미 무제한 통화스와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체결될 경우 한국 경제가 무너지면 미국 경제도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위험이 생기는 것"이라며 "그만큼 서로 어깨 걸고 가는 관계인데, 미국에 한국은 그 정도의 국가는 아닌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라는 것은 상호관세율을 15%로 인하하고 자동차 품목 관세를 인하하기 위해 양보한 카드지, 상설 통화스와프를 얻기 위해 양보한 카드가 아니다"며 "미국에서 해줄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유로존, 스위스, 영국, 캐나다 5곳으로 기축통화국 또는 핵심 우방국뿐이다.

이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고 필요한 방어 수단을 지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외환보유고에서 투자금이 나가면 환율이 크게 올라가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으로서도 관세를 부여한 효과가 사라진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며 "그에 따라 외환시장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도를 두고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