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에 있는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자력발전(원전)은 지어서 실제 가동하는 데에만 15년이 걸린다”고 한 것과 관련, 실제로도 원전의 건설 기간과 비용이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당장 시급한 인공지능 등 전력 수요 급증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원전이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신규 원전 건설을 공론화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원전은 지어서 실제 가동하는 데에만 15년이 걸린다. 가능한 부지가 있고 안전성이 확보되면 하겠지만 (원전을 지어서 당장 필요한 전력량을 충당하는 건)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 결국 재생에너지로 갈 수밖에 없는데, 김 장관도 그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풍력·태양광은 1~2년이면 되는데, 무슨 십몇 년에 걸려서 원전을 짓냐”고 했다. 과연 그럴까.
실제 전세계 원전 현황을 정리한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WNISR)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59기의 원전 가운데 40%인 23기의 공기가 지연됐고, 그중 7기는 그 기간이 10년이 넘어간다. 지연의 원인은 주로 안전 문제 때문인데,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짓고 있는 영국 힝클리포인트 원전의 경우 2016년 착공해 올해 준공할 계획이었지만, 유럽 안전 규제 강화로 설계가 바뀌면서 가동 시점이 2030년 이후로 미뤄졌다.
국내 원전들도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 지어진 신한울 1호기의 경우 2010년 4월 착공했지만, 후쿠시마 사고에 의한 안전 규제 강화로 착공 12년만인 2022년 12월이 돼서야 준공됐다. 현재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도 2008년 건설계획이 세워져 2017년 착공해 현재까지 건설 중이다. 새울 3·4호기는 착공 이후 실시계획 변경을 포함해 총 네 차례 일정이 연기됐는데, 주52시간제 도입과 2021년 3월 경주 지진으로 인한 내진 설계 강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에 따른 야간작업 제외 등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첫 원전 수출 사례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도 2012년 11월 착공해 2017년 5월 준공 예정이었지만, 내부 공극 발생 등을 이유로 2020년 8월에야 상업운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원전 건설 터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원전을 지을 데도 없다. 가능한 부지가 있으면 하는데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부지선정 기간까지 포함하면 원전을 계획해서 실제 가동하는 기간은 더 늘어난다. 2015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도 후보지인 삼척, 영덕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취소 수순을 밟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현재 다수 원전이 가동 중인 원전 부지들은 다 군사독재 정권 때 주민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한 곳들이다. 민주화운동 이후로는 삼척, 영덕 등의 계획 부지들은 모두 취소됐을 만큼 부지 선정 절차가 절대 쉽지 않다”며 “부지 선정부터 준공까지 최소 15년 안팎이 걸리는 원전을 기후위기 대응의 해법으로 가져가기엔 너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의 경제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설 비용이 늘어나는 점도 원전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영국 힝클리포인트 원전의 경우 애초 1.6기가와트(GW) 규모 원전 2기를 짓는 데 260억파운드(약 49조원)가 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460억파운드(약 86조원)로 비용이 급증했다.
한국형 원전인 에이피알(APR)1400도 시간이 갈수록 건설비가 비싸진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발전소별 공사비·사업비 자료’를 보면, 2007년 착공한 신고리 3·4호기는 건설비 최초계약금액이 5조5675억원이었는데, 10년 뒤인 2017년 착공한 새울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 건설비 최초계약금액은 8조6253억원으로 54.9% 비싸졌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설계 변경 등으로 2020년 이후 1GW급 원전 2기의 건설비가 11조원 안팎까지 급증했다는 게 원전 업계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말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이 크게 낮은 상황인 한국의 경우 먼저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게 산업 경쟁력 등에 더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알이(RE)100캠페인을 제안한 ‘클라이밋 그룹’의 샘 키민스 에너지 담당 이사는 한겨레에 “원전은 건설 기간이 너무 길고 원료 비용이 들지 않는 재생에너지에 비해 경제성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약 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인 한국의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는 게 기후위기 시대에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날 김성환 환경부 장관의 신규 원전 건설 공론화 필요성 언급과 관련해 환경부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원론적 차원의 말이고, 기후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니 ‘탈원전’이 아니라 ‘탈탄소’로 가는 게 중요하다는 게 핵심메시지”라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