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집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美, 한국에 도대체 왜 이러나”

조선일보 포크스톤=윤주헌 특파원
원문보기

“집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美, 한국에 도대체 왜 이러나”

속보
미국 뉴욕증시 3대 증시 초반 장세 일제히 폭락세 출발, 나스닥 1.2%↓
[美 한국인 구금 사태]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된 한국인들을 데려오려던 전세기 출발이 미국측 사정으로 어렵게 된 10일(현지시간) 한국인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에 주차돼 있던 버스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된 한국인들을 데려오려던 전세기 출발이 미국측 사정으로 어렵게 된 10일(현지시간) 한국인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에 주차돼 있던 버스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늦어지는 건지,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건지 왜 말이 없는 건가요. 이러다 정말 ‘추방’되는 거 아닌가요? 미국이 도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건가요.”

10일 새벽 3시(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남부 포크스톤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 인근에서 LG에너지솔루션 및 협력사 직원들의 석방을 기다리던 한 관계자는 “미국 측 사정으로 석방이 지연될 것”이란 외교부 발표를 뉴스로 접한 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는 허탈해하면서 “외교부 발표가 대체 무슨 뜻인 거냐. 곧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새벽 4시쯤 현장에서 만난 한 협력사 직원은 “석방되면 버스 타고 곧바로 공항 간다고 해서 공항에서 대기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가족들은 얼마나 애타는 심정이겠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연락도 못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ICE 건물 앞 도로는 어둠이 짙게 깔렸고 적막만 흘렀다. 당초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곳에 구금되어 있는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나오거나, 나올 채비를 하고 있어야 했지만 인기척조차 없었다. 이날 새벽 4~6시쯤 이들을 태워 애틀랜타 공항으로 갈 예정이던 ICE 버스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위압적인 경찰 때문에 분위기는 더 삭막하게 느껴졌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지 경찰이 바로 따라와 기자 옆에 차를 댔다. 경찰은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느냐”고 했다. 취재차 왔다고 하자 “이 풀밭에 서 있는 건 자유지만 도로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처벌된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하고 떠났다.

10일 오후 인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전세기가 애틀랜타에 도착도 하기 전에 ‘석방 보류’ 소식이 전해지자, 항공업계도 허탈해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교부가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아 우리도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이번 전세기는 정부가 대한항공에서 빌리는 형식이지만, 10억원의 비용은 LG엔솔이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종(B747-8i)은 미국 정기 노선에 투입돼왔던 항공기로, 무기한 대기 상태에 놓일 경우 대여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당국에 체포·구금된 한국인 300여 명을 태울 대한항공 전세기가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구금된 한국인들은 현지 시각 10일 오전 석방돼 오후 2시 30분(한국 시각 11일 오전 3시 30분)에 애틀랜타 공항에서 전세기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돌연 연기됐다./공항사진기자단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당국에 체포·구금된 한국인 300여 명을 태울 대한항공 전세기가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구금된 한국인들은 현지 시각 10일 오전 석방돼 오후 2시 30분(한국 시각 11일 오전 3시 30분)에 애틀랜타 공항에서 전세기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돌연 연기됐다./공항사진기자단


현지에선 이러다가 구금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현장에 있는 한 관계자는 “휴대폰도 다 뺏기고 구금돼 있는 직원들이 뭘 먹고 사는지도 모르겠다”며 “주중에는 변호사만 면회가 가능하다고 해서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교부에서 협상이 뭔가 틀어진 것 아닌지 모르겠다. 몇 시간 지연돼도 기다리기가 힘든데, 며칠씩 더 늦어진다면 정말 큰일”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까지 구금 직원들이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된 것처럼 밝혀왔다. 하지만 ‘자진 출국’으로 귀국하더라도 출입국 기록에 남아 향후 재입국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재입국 시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협상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석방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이고, 명확한 이유가 공개되지 않자 정부에 대한 불신도 생겨나고 있다.


실제 미국 현지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이 이민법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하고 위반자에게 가혹한 처분을 내리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고 지적해왔다. 뉴욕 이민법 전문인 송주연 변호사는 최근 본지 통화에서 “300여 명이 전세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성과”라며 “얼마 전 한국인 여대생 고연수씨가 4일 만에 나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이민법 전문 박동규 변호사는 “이민법 변호사들끼리 지금은 이민자 단속이 아니라 거의 납치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그만큼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말했다.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 취재진이 대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 취재진이 대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석방 보류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을 향한 격앙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조지아주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되면서 인력난이 상시화된 상황이라, 현지에선 캐셔(계산원) 할 사람조차 없다는 말이 나온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굴 고용해 무슨 교육을 언제 시키라는 건지 현실을 알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구금된 한국 직원들은 ESTA(전자여행허가)가 허용하는 범위 내의 업무를 했고, 합법적인 상용비자(B1)를 받아 일한 경우도 많다”며 “이민법 위반 여부가 명확히 결론 난 것이 아닌데도 범죄자처럼 끌고가 풀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은 건설이 98% 진행된 단계이고, 현재 장비 세팅 단계로 알려졌다. 장비 전문가들의 재입국이 불허될 경우, 내년 1분기 시운전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현지 전문가들도 트럼프 정부의 이번 단속이 미국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1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사건이 미국의 이민 규정이 외국 기업의 공장 건설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면서 “이런 시설은 완공되면 수만 명의 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보도했다. 조반니 페리 미국 UC데이비스 경제학 교수는 WP에 “많은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기 전에 훨씬 더 신중해질 것”이라며 “기업들은 공장 설립에 필요한 인력을 데려올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원샷 국제뉴스 더보기

[포크스톤=윤주헌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