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 8홀에서 열린 ‘빌드업 코리아 2025’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여러분이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재생된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전략가 스티브 배넌의 단호한 말에 청중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유에스에이(USA)! 유에스에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든 사람들의 환호 속에 배넌의 말이 이어졌다. “중국 공산당의 협력 아래 선거를 훔친 정당은 ‘철권’으로 대한민국, 그리고 위대한 한국 국민을 억압하려 들 것입니다.”
지난 5일과 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보수 기독교 행사 ‘빌드업코리아 2025’에선 이틀 내내 부정선거 음모론과 ‘한국 정부의 교회 탄압’ 주장 등이 여과 없이 펼쳐졌다. 스스로를 ‘코리안 마가’로 부르는 김민아(36) 대표가 ‘한국판 청년 마가 양성’을 목표로 2023년부터 열고 있는 이 행사엔 해마다 미국 극우 인사들이 총출동한다. 올해는 미 우익 단체 ‘터닝포인트유에스에이’ 창립자 찰리 커크(32),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잭 포소빅(4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앨릭스 브루세위츠(28) ‘엑스스트래티지’ 대표 등이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2020년 미국 대선이 중국 공산당에 의한 부정선거였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대통령 당선 역시 ‘중국의 음모’라고 규정했다. 중국이 배후에 있는 ‘부정선거’로 인해 한·미 양국이 고난에 빠졌으니, “한국의 우파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배넌의 딸인 모린 배넌(37) 워룸 대표는 6일 강연에서 “(한국이) 지금 겪는 일들은 2020년 11월부터 미국이 겪었던 일로, 본질이 선거 도난, 부정선거란 점이 꼭 같다”고 했다. 잭 포소빅은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권위주의 모델을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퍼뜨리려 한다”며 “한국의 정치·언론·경제 분야 곳곳에서 베이징의 손길이 닿은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와 김건희씨의 국정 농단에 대한 특검 수사를 비판하며 ‘미국 역할론’을 암시하는 발언도 나왔다. 찰리 커크는 “(특검이 교회 등에) 마구 들어가서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라며 “한국 정부가 벌이고 있는 일을 트럼프 대통령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계속 지금과 같이 행동한다면, 미국이 ‘옳은 일’을 위해 싸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가’, ‘윤 어게인’,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 등 구호를 적은 옷과 모자 등을 착용한 청중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유에스에이’를 연달아 외쳤다.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이 공동체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주장도 여러차례 제기됐다. 앨릭스 브루세위츠는 “며칠 전 뉴스를 보니 한국의 국무총리가 ‘더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 없는 정책을 가진 나라 가운데 번영하고 있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고 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반이민’을 주장한 날, 미국 이민 당국은 조지아주 현대차그룹-엘지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 현장 단속을 벌여 한국인 300여명을 정식 취업비자를 받지 않고 일한 혐의로 체포했다.
빌드업코리아 행사에는 이틀간 2천여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다수가 청년층이었고, 특히 기독교계 대안학교와 교회 등에서 단체로 참석한 중고등학생이 많았다. 교복을 입은 채 연단에 오른 한 청소년은 언론이 성소수자를 옹호한다며 “미디어가 편향된 정보를 집중 보도한다”고 비판했다. 한 20대 초반 여성 참석자는 “미국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고, 또 다른 20대 여성은 “최대한 빨리 결혼해 가정을 꾸려서 (보수 전사가 될) 자녀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행사 현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서명삼 서강대 교수(종교학과)는 “미국의 보수 진영은 10대부터 2030세대를 아우르는 젊은 인사들에게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주며 자신들의 가치관을 설파하는 매개체로 삼는다”며 “미국 극우 단체들의 차세대 양성 시스템이 빌드업코리아와 같은 행사를 통해 국내에 옮겨온다면, 이들 주장과 사고방식이 한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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