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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군산 시간당 152mm 폭우, 200년 만의 재난… 물, 전기 끊기고 상가·주택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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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군산 시간당 152mm 폭우, 200년 만의 재난… 물, 전기 끊기고 상가·주택 침수

서울맑음 / 11.0 °
군산 152.2㎜·서천 137㎜
군산, 역대 시간당 강수량 1위
"만조 시간대 겹쳐 피해 확산"
전주·김제·서천 등 '주민 대피령'


시간당 150㎜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전북 군산시 나운동의 한 상가 상인이 7일 물에 젖은 집기 등을 밖으로 들어내 말리고 있다. 독자 제공

시간당 150㎜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전북 군산시 나운동의 한 상가 상인이 7일 물에 젖은 집기 등을 밖으로 들어내 말리고 있다. 독자 제공


"가게 안으로 빗물이 들어오더니 30분 만에 발목까지 차더라고요.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일단 가게 문을 닫고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7일 전북 군산시 나운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차화영(30)씨는 긴박했던 전날 밤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군산 토박이라는 그는 "살면서 비가 이렇게 많이 온 적은 처음"이라며 "나운동 일대 상가들은 대부분 침수됐다"고 했다. 그의 말을 따라 이곳 주변 상가를 둘러보니 상인들은 오후 2시쯤에도 영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빗자루와 바가지로 바닥에 고인 물을 연신 밖으로 퍼내고, 젖은 집기를 빼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마트를 운영하는 40대 이모씨는 "새벽부터 나와서 청소하고 있는데 포장돼 있는 물건이 다 젖어서 쓸 만한 것들만 일단 골라내고 있다"며 "아무래도 오늘 장사는 못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전기 공급 끊겨… 주민 121명 긴급 대피



밤사이 내린 집중호우로 7일 전북 군산시 문화동 한 아파트의 변압기, 펌프실 등이 갖춰진 지하실이 침수돼 소방당국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전날부터 전기·수돗물 공급이 끊겼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밤사이 내린 집중호우로 7일 전북 군산시 문화동 한 아파트의 변압기, 펌프실 등이 갖춰진 지하실이 침수돼 소방당국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전날부터 전기·수돗물 공급이 끊겼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전날 밤부터 충남, 전북, 전남 등 서남부 지역에 밤사이 극한 호우가 쏟아지면서 곳곳이 침수되고, 폭우와 낙뢰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전북과 충남에선 200mm 넘는 비가 쏟아졌다. 특히 전북 군산시에는 시간당 152.2㎜의 비가 내려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68년 이래 시간당 강수량 1위를 기록했다. 충남 서천군에도 시간당 137㎜의 비가 장대처럼 쏟아졌다. 두 지역 모두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수 있는 정도의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기상청은 전했다. 전북과 충남 일부 지역에는 산사태주의보와 홍수주의보가 발효됐다.

군산 지역은 전날 만조 시간(오전 3시)과 겹쳐 집중호우로 하수가 역류해 피해를 더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점심 무렵부터 비가 그치고 햇볕이 들었지만 상인과 주민은 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문화동 한 아파트는 집중호우로 변압기실, 비상발전기실, 펌프실 등이 있는 지하실이 완전히 침수돼 전날 밤부터 전기와 수돗물 공급이 모두 끊겼다. 한 주민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엘리베이터 운행도 중단돼 계단을 오르내리는 주민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북 군산시 문화동 한 아파트에서 7일 밤사이 내린 집중호우로 수돗물 공급이 끊기자 시에서 제공한 생수를 한 주민이 가져가고 있다. 뉴스1

전북 군산시 문화동 한 아파트에서 7일 밤사이 내린 집중호우로 수돗물 공급이 끊기자 시에서 제공한 생수를 한 주민이 가져가고 있다. 뉴스1


60대인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새벽에 침수 징후가 보여 지하실 주변에 모래주머니도 쌓아 놓고 만반의 대비를 했지만, 사방에 있는 작은 틈 사이로 물이 계속 밀려 들어왔다"며 "전기, 물이라도 끊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려 했지만, 수압 때문에 지하실 문이 밖에서 열리지 않아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1992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8개 동에 716가구가 거주하는데, 저지대에 있어 침수 피해가 잦은 곳이다. 최근에는 바닥에 배관을 추가 설치해 비가 올 때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했지만, 200년 빈도 호우 앞에서는 힘이 없었다. 군산시는 이들 주민에게 1.5L짜리 생수 6개 묶음을 가구마다 제공하고, 물 빼기 작업을 하고 있다.

열차 운행 한때 중단… 농작물 피해도



7일 전북 전주시 색장동 일대에 도로와 주택 등이 잠기자 주민이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대피하고 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7일 전북 전주시 색장동 일대에 도로와 주택 등이 잠기자 주민이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대피하고 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짧은 시간에 내린 많은 비로 침수 피해가 우려되자 일부 주민은 학교, 경로당 등으로 몸을 피했다. 전주시는 이날 오전 8시쯤 송천 2동 진기마을 일대 주민에게 대피를 명령했다. 주민 43명은 용소중학교와 원당경로당으로 대피했다. 이 중 41명은 이날 오후 5시쯤 귀가했다. 군산·익산·김제·완주 주민 78명도 마을회관으로 긴급 대피한 뒤 7명을 제외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전주시 색장동에서는 주택 1층이 물에 잠겨 2층으로 대피한 주민 2명이 갇혀 있다가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됐다. 김제시 5개 읍·면의 통신이 두절됐다가 긴급 복구됐다.

폭우로 일부 선로가 잠겨 3시간 30여 분간 열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삼례~전주 구간이 물에 잠겨 열차가 이동할 수 없게 되자, 이날 오전 6시 25분쯤 전라선(익산~전주) 운행을 중단했다. 복구 작업을 완료한 코레일은 오전 10시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농작물 피해도 컸다. 금강과 접경 지역인 익산 망성·용안·용동면 비닐하우스들이 물에 잠겨 상추, 토마토 등 농작물 100㏊(헥타르)가 피해를 입었다. 전북도 재난안전본부에 따르면 7일 오후 기준 도내 상가 71동과 주택 36곳 등 100여 건의 침수 피해가 접수됐다.

충남에서도 58건의 비 피해 신고(배수 지원, 나무 쓰러짐, 토사 유출, 맨홀 역류 등)가 접수됐다. 서천에서는 지난 6일 주민 3명이 침수 피해가 우려돼 한때 인근 마을회관으로 대피했으나, 이튿날 오전부터 비가 잦아들어 귀가했다. 세종시와 금산군에서는 폭우와 낙뢰로 정전이 발생해 1,180여 세대가 불편을 겪었다.


광주 광산구 오선동 인근 도로에서 차량이 침수되면서 운전자와 동승자 등 2명이 119 구조대에 구조됐다.


군산=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서천=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