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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베팅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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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베팅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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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 유사시' 한국의 선택은
미국은 계속 묻는다, 다음은 중국
李-트럼프 회담서 우리의 입장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왕태석 선임기자·AP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왕태석 선임기자·AP 뉴시스


‘대만’은 우리가 중국을 상대로 꺼리는 금기어나 다름없다. 중화민족 부흥과 조국통일에 진심인 시진핑 주석의 발목을 잡는 건 적잖은 부담이다. 반면 패권을 다투는 미국은 다르다. 시 주석이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여도 개의치 않는다. 대만에 무기를 팔고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의 출구를 틀어막고 인민해방군이 2027년 대만에 쳐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하며 신경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면서 동맹을 향해 묻는다. 대만해협에서 정말 큰일이 터지면 어떡할 거냐고. 일본은 일찌감치 미국과 한배를 탔다. 이와 달리 한국은 선을 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할 때 답을 생각해보겠다”며 넘어갔다. 난처한 질문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단 비켜갔다. 아직은 먼 일로 여겼다. 당선이 코앞인데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그사이 게임의 판이 요동칠 조짐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패를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 임박했다. 우리 정부가 바뀔 때마다 미국의 청구서가 쌓이더니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아예 '돈(방위비 인상)-전략(주한미군 재배치)-인식(동맹 현대화)'의 3종세트를 들이밀며 총체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은 나토로 뭉쳐 러시아와 전쟁까지 감수했다. 마찬가지로 한미일 협력을 집단안보체제로 확장해 중국을 옭아매자며 양자택일을 재촉한다.

2021년 5월 문재인-조 바이든 회담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문구가 등장했다. 한미 정상이 대만 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중국은 “대만문제는 내정”이라며 “불장난하지 말라”고 반발했지만 그뿐이었다. 한 달 앞서 미일 정상이 신장위구르와 홍콩의 인권 탄압을 노골적으로 지적한 것에 비하면 수위가 한참 낮았다. 2023년 4월 윤석열-바이든 정상회담에서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 강력 반대한다'고 강도를 높였다. 다만 국제법에 보장된 항행의 자유를 감안하면 대만 이슈는 여전히 원론에 그쳤다.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속 시비를 걸 게 없었다.

이제 이재명 정부 차례다. 외교장관회담 결과 발표에 미국이 대만을 넣고 우리는 뺀다 한들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당면한 위협과 추구하는 이익이 서로 다르면 동맹은 엇나갈 수밖에 없다. 현대화로 포장된 동맹의 지각변동은 방향이 정해져 있다. 중국을 혼자 감당하기 버거우니 한국이 역할을 더 맡으라는 것이다. 주한미군을 더 이상 한반도의 붙박이 전력으로 고집하기 어렵다. 막무가내인 관세협상에 비춰 떠넘길 안보비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깡패”라던 여당 의원들의 거친 말마따나 사안마다 수세에 몰리는 처지다.

이 대통령이 곧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다. 대만을 넘어 중국까지 카드로 들이밀며 한국의 전략적 명확성을 압박하는 자리가 될 공산이 커졌다. 글로벌 공급망으로 편을 가르고 보호무역으로 제 잇속부터 챙기는 미국 우선주의에 맞서 줄타기 외교로 동맹을 관리하는 방식이 먹힐 단계는 지났다. 껄끄럽지만 중국을 견제하는 데 어디까지 동참할지가 관건이다.


2년 전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지 말라”던 싱하이밍 대사의 막말은 반박하고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작심하고 미국에 줄 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면 낭패다. 시장 변동에 맞춘 자산 배분이 투자 전략이듯 실용외교에 담긴 미국과 중국의 비중도 급변하는 국제정세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면 손해가 늘어날 뿐이다. 무모한 베팅은 도박이지만 신중한 베팅은 선택이다. 왕개미 투자자로 통하는 이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안다.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을지 국익의 포트폴리오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때다.

김광수 논설위원 rolling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