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논술] 2014학년도 연세대학교 수시 1차 논술 인문계열<하>

한국일보

[문제]'상상','주체', '폭력' 개념을 모두 사용하여 '공감' 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제시문 (가), (다), (라)의 사례를 활용하시오. (1,000자 안팎ㆍ50점)

[제시문 가]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책임자인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비밀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검사 : 피고인의 본명은 칼 아돌프 아이히만, 1939년에서 1945년까지 나치스 계획의 집행 책임자로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증인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증인 : 제가 본 피고인은 유태인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태인 이민자들을 위해 직업학교도 세우는 등 개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검사 : 그렇다면 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까?

아이히만 : 저는 단지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것은 저의 임무였으며, 저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을 뿐 입니다.

검사 : 수백만 명의 아이들과 남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책임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나요?

아이히만 : 제가 만약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제시문 다]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뤼카온은 아킬레우스에게 사로잡힌 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에게 아킬레우스가 이렇게 말한다.)

"자, 친구여. 그대도 죽을지어다. 왜 이렇게 비탄에 빠져 있는가? 그대보다 훨씬 훌륭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나 또한 얼마나 잘 생기고 큰지?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고,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여신이시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누군가가 창이나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로 나를 맞혀 싸움터에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갈 아침이나 저녁이나 한낮이 다가오고 있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자 뤼카온은 무릎과 심장이 풀어져 잡았던 창을 놓고 두 팔을 벌리며 주저앉았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날카로운 칼을 빼어 목 옆 쇄골을 내리쳤다. [중략] 검은 피가 흘러내려 대지를 적셨다.

* 파트로클로스 :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트로이아의 영웅인 헥토르에게 살해당했다.

[제시문 라]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인 에버렛 워딩턴은 1955년 어느 날 어머니가 무단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용서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학자인 워딩턴이었으나 그는 사건 현장을 보고 몸서리를 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라고 소리쳤다. 그는 분노 속에서 강도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폭력적 본성과 죄성(罪性)을 깨달았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워딩턴 교수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은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이 딱한 아이들도 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후 그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깊은 고뇌와 연구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 교육과 연구, 저술과 상담을 통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세를 갖도록 돕고 있다.

공감 부재가 부른 (가)(다)의 폭력성에 비해 (라)는 공감 통해 극복

[예시답안]

개인은 결코 다른 개인을 완벽히 파악할 수 없지만 타자를 상상하고 주체적 개체로 인식함으로써 타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타자가 행하는 행동의 과정에 공감할 수 있다. 이런 공감은 인간 사회와 관계를 구성하는 데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사회의 유지를 돕고 개인적 차원의 용서를 형성한다.

타자에 대한 공감은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저 사람은 어떤 기분이겠구나, 이런 상황이겠구나를 상상함으로써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제시문 (라)에서 이런 공감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에버렛 워딩턴은 강도들의 것과 같은 폭력적 본성을 떠올렸으며, 그를 통해 강도들의 마음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공감은 공감의 주체와 대상이 주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다. 제시문 (가)에서 아이히만은 공감의 주체로서 주체성과 그와 동시에 공감하는 능력을 포기했기 때문에 유태인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또한 제시문 (다)에서도 뤼카온과 아킬레우스가 '죽음'과 '운명' 앞에 주체성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공감이 상실될 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역시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폭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며, 이에 따라 폭력이 발생한다. 앞서 살핀 제시문 (가)와 (다)에서도 공감의 부재가 부른 것은 폭력이었고, 제시문 (라)에서도 워딩턴 교수는 강도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을 때 폭력적 본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여기서 공감이 발생했을 때, 폭력이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용서가 생겨나기도 한다.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이었던 강도가 공감을 통해 용서할 ?있는 대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송주영ㆍ서울 영일고 졸업

추상적 개념 풀어 적용하는 까다로운 문제지만 뛰어난 분석 돋보여

[문제 분석과 답안 총평]

근래 들어 '공감'이 화두가 되고 있다. '공감'이 인류의 문명을 진화시켜 왔다는 새로운 깨달음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유전학에서 거울신경세포가 발견됨으로써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그 힘을 얻고 있다. 과학 전문 기자들은 이 거울신경세포에 '공감 뉴런(empathy neuron)'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공감 의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생물학적 발견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라는 가장 고차원적 욕구가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후 '공감'이라는 개념이 우리 생활 전반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느끼는 것을 통해서 지각하는 방식을 말한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한다(feeling into)'는 뜻이다. 타인의 감정 상태를 지각한다는 '공감'이라는 주제가 대학별 논술 고사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런데 2014학년도 연세대학교에서는 사회계열, 인문계열을 아울러 '공감'이라는 주제를 동시에 출제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명 석학들이 '공감'을 문학, 예술, 신학, 철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소통이론 등 광범위한 분야에 도입함으로써 새롭고 풍부한 해석을 내놓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를 살펴 보면 요구사항이 까다롭다. 이 문제는 '상상', '주체', '폭력', '공감'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풀어서 작성하려면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들이 평소 당연하게 여기며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개념들이 문제를 통해 너무나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쉽게 푸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 요구사항을 살펴 보면 (가), (다), (라)의 사례를 활용하라는 요구사항이 있다. 제시문에 나타난 사례를 분석해 보면 된다.

(가)에서는 주인공 아이히만이 전범의 자격으로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유대인에게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훈육과 규율의 대상으로만 대하다가 국가가 내세우는 거짓 사실에 공감함으로써 유대인에게 폭력을 자행하여 그들을 학살한다. 결국 타자가 처해 있는 입장을 상상력을 사용하여 공감하지 못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주체가 대상을 또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제함으로써 폭력을 사용하는 사례이다.

또한 (다)에서도 주체인 아킬레우스가 군인으로서 적대관계에 있는 뤼카온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의 살려달라는 애원을 거절한다. 공감을 하지 못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대사에서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으며 자신 또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을 피해가지는 못함을 역설한다. 그 말에 뤼카온은 그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삶을 포기하게 된다. 결국 제시문 (다)가 제시문 (가)와 다른 점은 주체가 상상력을 사용하여 죽음에서 오는 보편적 두려움을 대상과 함께 공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군인으로서 대상에게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제시문 (라)에서는 주체인 워딩턴이 어머니가 무장강도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상상을 통해 무장강도들을 향한 폭력적 본성이 자기 자신에 내재함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무장강도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강도들에게 공감하며 오히려 그들을 용서 한다. 이는 자신과 강도들의 진정한 공감이 양자 모두에 작용하는 타자에 대한 배제적 입장을 극복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때 피해자로서 강도들을 용서하는 것은 강도와 피해자의 관계를 폐기하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결국 폭력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하여 주체를 주체로서 서 있지 못하게 하고 타자를 제3의 대상자로 밀어내고 배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인 워딩턴은 자신 안의 폭력적 본성을 깨닫고 강도들에게 공감하고 용서한다. 이는 인간으로서 진정한 주체에 도달하려는 힘든 노력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런 제시문의 분석을 통해 문제에 대한 답을 작성해보자. '공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는 요구사항에 맞게 '공감'에 대해 무엇을 써야 할지 개요 작성이 중요하다. 먼저 비교를 하는 것이 무난한 답안작성의 방법이 될 것이다. 비교는 (가)와 (다)를 비교하면 될 것이다. 주체가 대상이 처한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히만과 주체가 폭력을 휘두르는 대상에게 비록 폭력을 사용해서 맞서기는 하지?대상인 뤼카온에게 공감을 하는 아킬레우스를 비교 대조하면 된다.

자신의 견해는 (라)를 이용해서 서술의 실마리를 풀어가면 된다. 워딩턴이 아이히만과 아킬레우스와는 다른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이 실마리다. (라)에는 주체로서 대상에게 공감하며 폭력을 사용하기보다는 용서를 하는 모습에서 (가), (다)의 상반된 모습을 절충할 수 있는 변증법적 구도가 나타나 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폭력을 사용하여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무장강도들에게 워딩턴이 상상 속에서 강도들에게 복수하는 자신을 보며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 그리고 이내 곧 그들과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아닌 주체와 주체의 입장에서 관계 맺으며 용서를 하는 모습을 작성하면 된다.

수험생의 답안은 뛰어난 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논술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학생의 답안임에 틀림없다. 공감은 상대의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에서 시작한다는 점, 공감의 부재가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 공감은 주체와 대상이 대등한 관계에서 모두 주체성을 갖출 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점 등은 연세대학교가 출제 의도한 주제의식에 부합한다. 수험생의 답안은 제시문 (가), (다), (라)의 사례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문제의 요구사항에 맞춰 답안을 잘 작성하고 있다. 다만, 제시문 (다)의 내용을 작성할 때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면만을 역설하는 점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형ㆍ종로학원 논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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