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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정부와 한 몸’만 강조해선 표 못 얻어…여당 목소리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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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여의도 복귀한 김부겸 전 행안부장관

“당·정·청 관계 더 치열해져야

결정만 따르면 민심 외면받을 것

최저임금·52시간제도 현실 맞게

내부 토론 뒤 수정할 수 있어야”

“북미, 남북관계 빅딜 얘기하면서

자유한국당과는 빅딜 왜 못하나

개헌도 선거구제와 같이 논의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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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인 김부겸 의원(61·더불어민주당)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마치고 2년 만에 여의도로 다시 돌아왔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원내대표 출마설 등 벌써 그의 거취를 놓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돌아왔는지, 앞으로 꿈꾸는 정치는 무엇인지 등의 얘기를 들어봤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효창공원에서 김 전 장관을 만났다.

여전히 김부겸다웠다. 투쟁과 대결보다는 통합과 공존을 강조하고, 원칙과 이상보다는 현실과 실현 가능성을 먼저 따졌다. 선거구제 개편을 위해서는 자유한국당이 원하는 개헌도 함께 테이블에 올려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제에 대해서도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이전보다 훨씬 넓어져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에 막혀 도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 전반의 기득권화 문제 등의 과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서는 “걸맞은 콘텐츠를 먼저 채워야 한다”면서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거의 2년 만에 여의도로 다시 돌아왔는데 어떤가.

“바람 잘 날 없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일상적인 긴장에서 놓여나 좋지만, 여당의 책임이라는 것을 다시 절감하고 있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우리와 국민 사이의 간극이 있는 게 느껴진다. 어떤 것은 계급적인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국가가 공화국 형태를 갖춘 지 어느 정도 되니까 나타나는 세대별 기득권화 때문인 것 같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사회생활 빠른 출발이 기득권이 돼서야”

―무슨 뜻인가?

“기자들도 먼저 출발한 사람은 지금 대기자가 되어 여론시장을 주도하고 있듯이 정치권 등 각계에서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던 사람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도미네이트(지배)하고 있지 않나. 우리 때는 열심히 하고 한우물만 파면 어쨌든 성공했으나 지금은 모든 분야가 꽉 차 있어서 젊은 사람들은 기회가 없다. 주거문제만 해도 과거에는 조금 돈을 빌리고 모으면 연탄 때는 작은 아파트나마 구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평당 4천~5천만원이나 되니까 젊은이들이 마련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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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문제를 정치가 풀어야 하지 않나?

“그렇다. 그런데 여야가 서로 드잡이만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앞선 국가들의 사회구조나 조직, 산업은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종종걸음도 치지 못하고 있지 않나. 디지털 혁명 시대에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 때 교육받거나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국가의 의사 결정을 장악하고 있다. 감당이 안 된다.”

김부겸이 행안부 장관에 재임할 동안 유난히 재난 등 사건 사고가 잦았다. 포항 지진(2017.11)을 비롯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12),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1), 폭염(2018.8), 강원도 산불(2019.4) 등 큰 것만 꼽아도 다섯 건이다. 그럼에도 그의 장관직 수행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좋다. 지난해 5월 <머니투데이>가 국회의원과 보좌관 345명을 상대로 문재인 정부 1기 장관 18명에 대해 평가했을 때 그는 김영춘(해양수산부), 김현미(국토교통부) 장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의 즉각적인 현장 대응 능력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임기 마지막에는 느슨해질 수도 있는데, 강원도 산불이 나니까 이임식도 취소하고 현장으로 갔더라.

“장관직 시작할 때는 가뭄이 한창이어서 취임식하고 바로 다음 날 충북 진천의 저수지에 갔었는데, 마지막 날은 공교롭게도 강원도 산불현장에 있었다. 일해 보니까 재난이 났을 때 장관이 현장에 있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 재난을 당한 국민에게는 하소연을 들어주고, 현장 공무원들에게는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존재가 장관이다. 산불이 커진다는 보고에 4일 자정에 강원도로 출발했는데 그건 행안부 장관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포항 지진 때 수능시험 연기를 건의했던 것도 되돌아보면 잘했던 결정 같다. 하루 앞둔 전국 시험을 연기한다는 발상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포항 교육장과 몇몇 교장 선생님, 학부모와 통화했더니 직접 시험 연기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구 이런 와중에 애들보고 시험치러 가라고 해야겠습니까’라고 하더라. 예정대로 진행하면 포항지역 6천명 수험생에게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감수하라는 것이 되겠더라. 일부는 시험을 실력대로 잘 쳐서 괜찮겠지만 나머지 애들은 시험을 망칠 것이고 그러면 평생 국가가 나를 버렸다는 상처를 안고 가지 않겠느냐는 판단이 들었다. 세월호 문제가 바로 그거였는데 또다시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부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일을 잘하고 있나.

“문 대통령의 성격이 막 몰아붙이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토론과 협업을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등 이런 데서는 조금 부족한 게 있는 것 같다. 저는 당·정·청 관계가 지금보다 조금 더 치열했으면 좋겠다. 합의하고 결정된 것을 따라만 가는 것은 의미 없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이나 52시간 문제에 대해서도 그것이 현장에서 부작용이 있다면 수정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채워주지 않고서는 내수경제나 그 다음의 패러다임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득주도성장의) 판단은 현재로서도 유효하지만 집행과정에서 현장과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메우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청문회에서 중소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올해 동결해야 한다고 했듯이 그런 대안을 놓고 토론을 해야 다이내믹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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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 간 통과 법안 없는 게 위기”

김부겸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원래 학생운동과 재야 민주화운동의 적자 출신이었으나, 김대중과 김영삼 등 계파 수장들의 이합집산으로 인해 보수진영인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전신)에 잠시(1997년~2003년) 몸을 담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진보진영인 민주당에서 늘 비주류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공존과 상생, 통합의 정치를 줄곧 강조해 왔다.

―국회는 여야 간에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주요 요인이다. 이것을 해소하려면 표를 받는 만큼 각 정당이 의석을 가져가는 선거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또 이긴 사람이 다 차지하는 현행 대통령제도 정치 대립을 격화시키는 요인이다. 대통령직을 놓친 사람은 진 날부터 그냥 저주만 퍼붓다가 세월을 보내는데 이건 아니다. 결국은 개헌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지난번에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이 있으니 그것을 토대로 열어놓고 논의하면 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놓고 협상하는 현재의 논의 수준보다 훨씬 큰 얘기인데.

“국회의원 선거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만 갖고는 자유한국당이 협상 테이블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자꾸 도덕 선생처럼 우리가 하는 것은 좋으니까 너희는 반대 말라고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바른미래당의 일부 반대 등으로 인해 선거법 개정을 지금 패스트트랙에도 못 올리고 있지 않나. 벌써 집권 2년이 지나는데 대통령이 중요한 의지를 가진 의미 있는 법안이 통과된 게 뭐가 있나. 집권세력은 이런 데에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원하는 것을 내주고 타협해야 한다는 건가?

“그 정치세력을 우리 국민의 1/3은 지지하고 있지 않나. 그런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고 미래에 대해 어떤 합의를 할 수가 있나.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합의를 해야지 산업구조를 어떻게 가져갈 건지 등 미래에 대한 합의가 될 것 아니냐. 그것(야당이 원하는 개헌)에 대해서는 그건 우리는 모르겠고, 우선 이것(내가 원하는 선거구제)만 내놓으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동의할 리가 있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만 빅딜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끼리도 빅딜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손바닥도 마주쳐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등장한 뒤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조심스럽긴 한데 그 안의 의원들 생각이 똑같지는 않다고 본다. 저쪽에서도 의회 민주주의의 본령에 관한 고민을 하는 의원들이 많다. 지금 드러나는 분들이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 ―여당인 민주당의 존재도 잘 안 보인다.

“의원들이 앞으로 조금씩 발언을 할 거다. 그동안은 과거 열린우리당 때 ‘봉숭아학당’이라고 비웃음을 받은 데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어서 가능한 개인적 의견이 있어도 의원들이 참았는데 이제는 해야 한다. 그래야 당이 살고, 당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정부를 끌어갈 수 있다. 그래야만 여론을 수렴할 수 있고, 국민이 당을 믿을 수 있다. 그런 과정은 없이 ‘우리는 정부와 한몸입니다’고만 해서는 국민이 표를 주겠나. 안정성이라든지 예측 가능성이 커야 하는 행정 행위와 수시로 변하는 민심의 바다에서 항해해야 하는 정치 영역이 같을 수는 없다.”

“우선 과제는 내년 총선 돌파
정권 성공하는데 역할해야 의미
대선주자 콘텐츠 채워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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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올인해야…원내대표 안 나가

김부겸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에서 당선됐다. 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앞서 그는 2011년 12월 “지역주의, 기득권, 과거라는 세 개의 벽을 넘으려 한다”면서 3선을 했던 경기 군포를 떠나 대구로 내려갔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경력으로 인해 오랫동안 ‘경계인’에 머물러야 했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차기 대선주자의 한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걸맞은 콘텐츠를 공부하고 채워나가야 한다. 저에게 주어진 우선 과제는 내년 총선을 돌파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권의 성공으로 연결해야 한다. 정권이 먼저 성공하고 거기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만 의미가 있고 여당 지지자들한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곧 있을 당 원내대표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지금 대구 경북을 두고 어딜 간다는 말이냐. 대구 경북의 내년 총선은 지금부터 올인해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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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나?

“대구가 경제적 주름살이 제일 깊은 도시 중의 하나여서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 화가 나 있다는 것은 빨리 돌파구를 마련해 달라는 기대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저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한번 붙어보려고 한다. 저들은 지역주의를 다시 동원하려 하겠지만, 저는 우리 시대를 넘어 우리 자식들을 위해 이 지역이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갖고 얘기하려고 한다.”

인터뷰 장소를 정할 때 그는 효창공원 후문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를 지목했다. 기자와 만난 뒤에 주변 재개발 공사로 카페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인터뷰 장소가 효창공원 벤치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이왕지사 백범 묘소 앞에서 사진 찍을지를 슬쩍 물었더니 “쇼처럼 보인다”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인터뷰 도중 인근 주민들이 보고 목례를 하고 지나가면 “김부겸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화답했다. 인터뷰가 흩트려질까 봐 걱정됐지만, 다행히 그는 곧바로 답변 흐름을 되찾았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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