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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원희복의 인물탐구]전국 유일 경기도 ‘평화부지사’ 이화영 “북, DMZ에 평화공원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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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도청 서울사무소에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시장이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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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유일하게 단 한 명의 독특한 부지사가 있다. 경기도에 있는 ‘평화부지사’다. 경기도가 평화부지사를 둔 것은 그만큼 남북교류와 평화통일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분단 현장인 판문점과 남북경협의 상징 개성공단, 그리고 김포·파주·양주·연천 등 접경 기초자치단체를 관할하는 경기도는 남북 교류와 협력이 중요한 현안이다.

남북 교류·협력 이론과 실무 겸비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56)는 북에 몇 번을 갔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다녀왔고, 이미 2007년 <한반도 평화경제공동체 구상과 전략>이라는 저서도 냈다. 그는 남북 교류·협력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행정안전부가 2월 7일 225개 사업에 13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접경지역 종합발전계획을 내놨다. 경기도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가.

“무척 고무적이고 반갑다. 접경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동안 각종 규제와 제약 등으로 많은 피해를 봤다. 이들의 가계소득은 전국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된다. 남북 교류·협력 시대에 이들이 보상받아야 한다. 행안부뿐만 아니라 문체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비무장지대(DMZ) 종합협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평화부지사’를 신설한 이유는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진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나.

“그렇다. 이 지사는 남북 교류·협력 시대에 성과를 내도록 요청했고, 나도 흔쾌히 수락했다. 이 지사는 나에게 거의 전권을 줘 편하게 일하고 있다.(웃음) 그동안 평양을 두 차례 다녀오고, 중국에서 여러 차례 북측과 협상했다.”

-지난해 경기도는 북측의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을 초청해 고양시와 판교 테크노밸리 등을 둘러보고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학술회의도 같이했다. 그때 평양 옥류관 남한 분점 얘기도 오간 것인가.

“북측은 처음 옥류관 분점을 파주와 개성 사이 DMZ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DMZ 안에 영리 목적의 옥류관을 세우기도 어렵고 일반인 접근도 힘들어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고양시 호수공원 근처를 제시했다. 리종혁 위원장도 이곳을 둘러보고 ‘참 좋다’고 했다.”

-올해 경기도가 주최하는 남북 공동행사로는 무엇이 있는가.

“4·27 정상회담 1주년 기념으로 파주~개성 간 DMZ 평화마라톤 개최에 합의했다.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가로질러 남에서 북으로 달린다. 풀코스, 하프코스, 10㎞ 등 국내외·북측 마라토너 2만명 정도를 모집하는 대규모다. 현재 관계부처와 협의 중인데, 유엔사와 국방부 등 우리 측 제재요소가 더 많다. 오는 9월 19일에는 DMZ 평화포럼을 개최한다. 전세계 평화 관련 석학과 전문가, 예술인들이 세미나와 예술행위도 하는 평화축전이다. 기대하건대 다보스포럼처럼 계속 이어지는 국제적 평화포럼으로 만들려고 한다.”

-<경향신문>이 통일구간마라톤대회를 한다. 49년된 전통의 대회인데 경향신문사 앞에서 임진각까지 47㎞를 뛴다. 원래 통일역전마라톤대회였는데, <경향신문>과 같이 주최해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뛰는 것은 어떨까.

“그것 좋은 생각이다.”

DMZ 평화포럼도 좋고, 생태평화공원을 만드는 것도 좋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DMZ 안에 남북 공동의 ‘평화시’를 제안했고, 실제 구체적 도시설계까지 했다. 이후 김영삼·노무현, 심지어 박근혜 정부도 DMZ 내 평화공원을 제안했다. 그러나 정작 평화·통일을 기억하고, 추구하는 기념관은 대한민국에 단 한 군데도 없다. 서울 용산에 전쟁기념관이 있다. 임진각에는 탱크가 전시된 안보박물관과 옆에 평화누리공원이 있지만 평화·통일 역사를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제주에 있는 평화박물관은 태평양전쟁을, 백낙청·한홍구 교수가 추진하는 평화박물관은 베트남전을 추모한다. 정작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된 사실을 기록하고 교훈을 얻는 평화기념관 혹은 평화전시관이 없는 것이다.

“사실 북측이 놀랄 만한 제안을 했는데 묻혀버린 것이 있다. 북측은 파주 개성역과 도라산역 사이에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북측은 이 평화공원에 기념관도 만들어 남북한이 외세 침략에 의해 고통받았던 사실을 기록하고 추모비도 만들어 추념하자고 했다. 여기에서 전세계를 향해 평화선언을 하고, 평화를 기억하는 장소로 만들자고 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DMZ 안 궁예도성 복원에 합의했다. 이것은 북측이 더 이상 DMZ를 군사적 개념이 아닌, 평화적 개념으로 인식한다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DMZ 내 평화공원·기념관은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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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6일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아태평화번영 국제회의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에서 네 번째)와 리종혁 북 아태평화부위원장(오른쪽에서 네 번째), 이화영 평화부지사(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남북 참석자가 박수를 치고 있다. / 경기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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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내 평화공원·기념관 가능성 커

박근혜 정권 때 우리가 평화공원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거부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북측이 적극적이다. 이 부지사는 “2차 북·미회담 이후 제재가 좀 완화되면 평화공원 사업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민간인 출입도 자유스럽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북측은 이벤트성 행사보다 실익이 되는 사업을 원하고 있다. 북측은 그동안 많은 남측 인사를 초청해 나름 접대했는데 실익이 별로 없었다는 불만이 있다는 후문이다. 원인은 대북제재 때문이다. 다행히 2월 말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경제제재가 풀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의 3월 방북도 미국의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려는 북측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이 부지사는 “북측은 개성공단뿐 아니라 남포·해주·신의주까지 다 남측 기업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면서 “먼저 북측이 경기도 기업인과 간담회를 갖고, 우리 기업인이 다시 남포·해주공단을 돌아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부지사는 특히 “민원과 농민의 반발로 우리 농촌에서 하기 어려운 양돈·양계·스마트팜을 북측이 원하고 있다”면서 “황해도에 태양광으로 전기도 자급할 수 있는 농업시범마을을 만들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전쟁까지 치른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통일로 바뀐 것은 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다. 분단을 막으려 했던 김구·김규식 선생을 비롯해, 평화통일을 외치다 죽은 진보당 조봉암 당수와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6·25 때 남북을 오가며 ‘전쟁 그만’을 외치던 박진목, 몸으로 분단을 넘은 문익환 목사 등이 있다.

이 부지사 역시 ‘평화 밀사’로 남북을 오간 인물이다. 2006년 10월 9일 북측이 핵실험을 하고 남북관계가 모두 단절된 냉엄한 상황이었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은 얼어붙은 남북관계 돌파구를 위해 누군가 북에 보내야 했다”면서 “현직 국회의원으로 외무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이고 평소 신임하는 사이였던 나보고 갔다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부지사는 그해 12월 몰래 평양에 들어가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북측에서는 ‘당신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으니 더 고위층을 데려와라’고 했다. 그는 총리를 막 마친 이해찬 현 민주당 대표와 정의용 현 청와대 안보실장과 함께 다시 평양으로 갔다. 그는 “이후 김만복 국정원장이 이어받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면서 “원래 2007년 8월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지만 북측에 큰 물난리가 나 결국 10월 4일로 늦춰졌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10·4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킨 인물이었던 것이다. 당시 그가 상대한 협상 파트너는 김성혜 현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다. 김성혜 실장은 지난해 6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수행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이 부지사는 앞으로 남북관계에 대해 “2월 말 북·미 정상회담 이후인 3월 말이나 4월 초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열릴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이때 구체적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합의를 이루고, 그 협력사업이 올 하반기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북측에 대한 인프라 공사나 중소기업 입장에서 엄청난 수요가 창출될 수 있지만 남측의 자본적 탐욕만이 아닌, 북측도 좋은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부지사는 1961년 강원도 묵호(현 동해시)에서 태어났다. 묵호중을 다니다 부친 사업이 망해 일자리를 찾아 가족 모두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서울 중대부고를 거쳐 1981년 성균관대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1학년 때부터 학내시위에 가담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7살에 들어가 징집연령인 만 18세가 안돼 강제징집을 면하고 구류 30일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이때 강제징집된 친구 상당수는 ‘녹화사업’(운동권 학생을 학원 프락치로 활용)에 이용됐다.

83년 대학 3학년 때는 시위를 주도해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1년 만에 특사로 출감했고, 이후 안산·부천 등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86년 다시 구속됐다. 이 노동운동을 계기로 1988년 이상수 의원 비서관이 됐다. 당시 노무현·이해찬·이상수 세 사람은 국회 ‘노동위 3인방’으로 불리며 뛰어난 의정활동을 보였다. 현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등 노동조합은 이들 노동위 3인방의 법적 조력이 없었으면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부지사는 “컴퓨터가 없을 때 일본 노동법 조항을 일일이 오려 붙여 가면서 개정안을 만들었다”면서 “그때가 가장 열심히 헌신했던 내 인생의 최고 시기”라고 말했다.

노동운동 하다 의원 비서관으로 발탁

이 부지사는 2002년 노무현 선대위에 참여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고, 2004년 이상수 의원 지역구(중랑갑)를 물려받아 17대 국회의원이 됐다. 30대 초반의 그는 열린우리당 재외동포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외무통일위 간사로 주로 민족문제(해외 독립운동가 및 해외동포)에 매달렸다. 2005년 남북청년정당인대회 남측 수석단장으로 활동하다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평양에 들어가면서 남북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5년 이상수 전 의원이 특별사면을 받자 지역구를 양보했고,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동해·삼척 공천을 받았으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면서 공천이 취소됐다.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 불법정치자금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7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이재명 후보에게 남북문제 리포트를 몇 번 해줬고, 경기지사 경선 때 전·현직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다고 해 참여했다”면서 “항간에서 나를 이해찬 대표가 이 지사에게 파견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를 고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대표와 함께 한 ‘친노’·‘친이’다. 최근 소위 친문세력으로부터 이재명 지사가 집중 견제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지난해 10·4 평양 정상회담 공식수행원에 이 경기지사가 빠지자 개인 블로그에 “경기도와 청와대가 원팀이 되어 더 빛을 발하길 희망했던 것이 꺼진 날… 이번 결정 너무너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청와대 처사를 ‘원망’했다.

이 부지사는 “지방행정을 잘 몰랐는데 옆에서 보니 이 지사는 ‘가성비’ 있는 정책을 착착 만들어 내고 성과를 낸다”면서 “이 지사는 있는 예산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기막히게 아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고 디테일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현재 평화부지사 역할이 만족스럽다”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다.

“남북관계는 70년 이래 최대 변화를 맞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동북아 평화가 오느냐 마느냐가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기업도 남북이 시너지를 내고 만주·연해주 대륙으로 나갈 중요한 시기다. 나는 ‘평화가 경제이고 밥’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이 시기는 우리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게도 중요하다. 남북문제에 당리당략이 아닌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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