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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유니클로·원더브라에 밀렸다, 62년 전통 '빨간내복'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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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전통 토종 속옷 비비안 위기

해외 SPA·인터넷유통 거센 공세

‘올드’ 이미지로 젊은층도 외면

비비안 “매각 등 다각도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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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 1순위가 빨간 내복이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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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 1순위는 빨간 내복이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 포근함과 따뜻함을 전해주는 내복은 최고 효도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엔 통풍성 좋은 모시 메리 몇장이면 거뜬하게 여름을 보냈다. 아버지의 셔츠 속에는 늘 새하얀 메리야스가 함께 했다.

빨간 내복, 모시 메리, 메리야스로 대표되는 토종 속옷 브랜드가 위기를 맞았다. 오랜 시간 국민의 삶에 녹아들며 성장세를 이어왔지만, 저출산, 내수 침체 등으로 속옷 시장이 정체에 빠지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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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란제리 편집숍인 '엘라코닉'에서 모델들이 와이어가 없는 여성 속옷인 '브라렛'을 선보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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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유니클로와 같은 대형 SPA(제조ㆍ유통일괄형) 브랜드의 등장, 인터넷 유통망을 통한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토종 속옷 브랜드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1957년에 설립된 남영비비안은 국내 장수 속옷 회사 중 한 곳이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남영비비안은 최근 매각 주관사를 선정해 경영권 매각 검토에 들어갔다. 매각 대상은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지분율 23.79%)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75.88%다.

남영비비안은 23일 경영권 매각 추진과 관련한 조회 공시 답변을 통해 “구체적으로 결정되거나 확정된 사항이 없다”며 “향후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항이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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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비비안이 출시한 브라. [사진 남영비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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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토종 속옷 업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한정된 파이를 나눠야 하는 시장 구조 때문이다. 해외 브랜드와 대형 SPA는 물론 아웃도어 브랜드도 이너웨어를 만들고 있다. 또 대형 유통업체도 자체상품(PB)을 통해 속옷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여기에 홈쇼핑을 통해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속옷 브랜드도 봇물이 터지듯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속옷 브랜드인 원더브라의 경우 2009년 국내 진출 이후 2013년 속옷 시장 점유율이 1.4%에서 지난해엔 4.4%까지 늘었다. 유니클로의 속옷 시장 점유율도 2013년 2.2%에서 지난해 3.1%를 기록했다.

반면 국내 토종 브랜드의 실적은 들쑥날쑥하다. 62년간 국내 여성 속옷 시장을 선도해온 남영비비안은 지난해 매출 2061억원, 영업손실 3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2094억원)과 영업이익(5억원) 모두 나빠졌다. 회사는 실적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393명이던 직원을 지난해 236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과 더불어 서울 영등포구 소재 공장 등 자산을 매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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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 로고. [중앙포토]




‘비너스’로 대표되는 신영와코루도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7% 줄었다. ‘보디가드’를 운영하는 좋은사람들은 2016년과 2017년 연속 4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가 제조원가 절감을 통해 지난해 2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트라이’를 보유한 쌍방울도 각종 비용을 줄이는 노력 끝에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토종 속옷 브랜드의 경우 예전 스타일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젊은 신규 고객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며 “속옷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수많은 신규 브랜드가 생겨나는 데다가 경기 침체로 의류 시장이 침체하면서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토종 속옷 업체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고급화, 유통망 확대, 인기 모델을 기용한 젊은 이미지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비비안의 경우 스포츠 브라나 와이어를 숨긴 브라 등을 출시하며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며 “하지만 토종 브랜드의 노력에 비해 아직 드라마틱한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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