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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기억할 오늘] 영화 ‘그린북’이 스쳐간 것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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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영화 '그린북'의 실제 주인공 돈 셜리. 그는 재즈 뮤지션을 얕보는 대중의 시선에 분노하곤 했다. 그의 1957년 음반


미국 짐크로(Jim Crow)법 시대의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Donald W. Shirley, 1927.1.29~2013.4.6)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피터 패럴리의 영화 ‘그린북’은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개봉 직후 제기된 이런저런 사실 왜곡 논란들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셜리 자신이 끝내 뛰어넘지 못한 자존적 결핍감을 영화가 충실히 담지 못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영화는 극적 대비를 위해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의 셜리의 면모를 한껏 강조했지만, 정작 그는 정통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술집이나 클럽에서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대접받는 것에 상처받곤 했고, 더 근본적으로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음악가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쯤으로 인식되는 현실에 분노하곤 했다. 물론 그 바탕도 흑인 차별이긴 했지만 말이다.

셜리는 플로리다 펜서콜라의 자메이카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공회 사제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의 지원 속에 그는 2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는 등 엘리트 음악인으로 성장했다. 버지니아 주립대와 프레리뷰 대학을 거쳐 워싱턴DC 가톨릭대를 졸업했고, 18세이던 45년 보스턴 팝오케스트라, 46년 런던필하모니와 협연했고, 55년 카네기 홀에서 연주했다.

그는 클래식에 팝과 재즈, 흑인 음악 등의 주법과 리듬을 가미, 오늘날로 치면 팝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선도한 연주자였다. 20대의 그는 흑인 피아니스트에겐 클래식 콘서트 무대에 설 기회가 드무니 재즈나 팝을 하라는 충고에 낙담했고, 한때 음악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첼로나 더블베이스 주자들과 팀을 꾸려 뉴욕의 나이트클럽에서 듀크 앨링턴 등 당대 재즈 뮤지션들과 공연했다.

뉴욕 나이트클럽 경비원 토니 발레롱가를 운전사 겸 보디가드로 채용해 남부 순회공연을 나서던 1962년 무렵의 그는 1년 전 싱글 ‘Water Boy’로 빌보드 핫100 차트 40위에 오른 클래식ㆍ재즈 피아니스트였다. 1982년 인터뷰에서 그는 클럽에서 재즈피아니스트가 연주하면 관객들이 다가와 술잔을 피아노 위에 얹고 바라보곤 한다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는 무대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이라고 말했다.

2016년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오케스트라 단원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1.8%에도 못 미친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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