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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억할 오늘] 예지 쿠쿠츠카 로체에 묻히다(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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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폴란드의 전설적인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가 30년 전 오늘 히말라야 로체의 만년설에 묻혔다. 사진은 폴란드의 1988년 기념우표.


1980년대 등반계의 최대 관심은 이탈리아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1944~)와 폴란드 출신 예지 쿠쿠츠카(Jerzy Kukuczka, 1948~1989)의 8,000m급 14좌 완등 경쟁이었다. 후발 주자 쿠쿠츠카의 추격이 가히 경이로웠다.

둘 모두 수많은 ‘세계 최초’ 기록을 보유한 전설적인 등반가다. 메스너는 70년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8m)에서 시작해 86년 히말라야 로체(8,516m)까지 16년 만에 인류 최초로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올랐다. 그는 75년 카라코람 가셔브룸 1봉(8,070m) 등정으로 8,000m급 봉우리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고,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과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 세계 최초 기록도 세웠다. 한동안 그는 독보적이었다.

폴란드의 광산 전기 기술자 출신 산악인 쿠쿠츠카는 79년 로체, 80년 에베레스트를 잇달아 오르면서 레이스를 시작했다. 이후 그는 매년 한두 개 봉우리를, 85, 86년에는 무려 한 시즌에 두 개의 8,000m급 봉우리를 등정했다. 믿어지지 않는 속도였고, 승부욕이었다. 그는 87년 9월 시샤팡마를 등정, 레이스를 시작한 지 7년11개월 만에 14좌를 완등했다. 2014년 한국의 산악인 김창호가 그의 기록을 한 달 8일 단축할 때까지 그는 14좌 최단기 완등 기록을 보유했다. 게다가 11개봉을 신 루트로, 모두 알파인 스타일로 올랐고, 4개봉을 동계 초등했다. 86년 그가 처음 오른 K2 남벽은 그만의 루트로 남아 있다.

쿠쿠츠카는 막강한 후원자를 두고 최고의 장비로 등반한 메스너와 달리 가난한 공산국가의 가난한 산악인이었다. 그는 소방대가 쓰던 무쇠 카라비너와 동네 주물 공장서 주문 제작한 아이젠을 썼고, 다른 원정대가 버린 장비를 줍거나 중고로 사 쓰기도 했다. 등반 경비를 벌기 위해 몇 달씩 공장 굴뚝에 매달려 페인트칠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정황 탓에 두 등반가는 나란히 언급될 때가 잦다. 기량의 우열을 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쿠쿠츠카와 달리 메스너에겐 적어도 한동안은 경쟁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기록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메스너는 “쿠쿠츠카는 ‘두 번째’가 아니라 그냥 위대한 산악인”이라고 말했다. 쿠쿠츠카는 89년 10월 24일 로체 남벽 등정 도중 로프가 끊기면서 소식이 끊겼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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