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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기억할 오늘] 남수단 톤즈의 이태석 신부(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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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영화 '울지마 톤즈'의 가톨릭 선교사 이태석 신부가 1962년 오늘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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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수단 내전은 2차대전 이후 가장 길고 잔혹한 무력 분쟁 중 하나로 꼽힌다. 내전은 식민지 시절 정치적 패권을 쥐고 있던 아랍계 이슬람권의 북부가 자치를 원하던 기독교 중심의 비아랍계 남부지역을 이슬람화하면서, 1956년 독립과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1972~1983년의 휴전기를 빼고 2차 내전(1983~2005)까지 근 40년 동안 약 2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이들이 성폭력을 겪었고, 손발이 잘린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냉전과 아랍 분쟁의 이해에 얽혀 미국과 소련과 이집트 등이 개입했지만 그 개입은 사실상 무기원조였다.

가톨릭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사제 겸 의사 이태석(1962.10.17~2010.1.14)이 남수단 와랍주 주도 톤즈에 정착한 2001년 12월은 내전이 채 끝나지 않은 전시였다. 갓 사제 서품을 받은 39세 선교사 이태석은 거기서 만 7년간 의료 교육 선교활동을 했다. 그 이야기가 자전 에세이 ‘내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2009)로, 영화 ‘울지마 톤즈’(2010)로 소개됐다. 2018년 남수단 정부는 그의 일대기를 초중등 교과서에 수록했다.

부산서 나서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만 29세에 수도회에 입회한 그는 광주가톨릭대학과 로마 살레시오 대학을 거쳐 2001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99년 아프리카 케냐 선교 체험 활동 중 남수단의 참상과 톤즈의 처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질병 치료와 교육 외에 독학으로 익힌 기악 실력으로 마을 아이들과 함께 브라스밴드를 꾸리기도 했고, 아이들과 공차기도 즐겼다고 한다. 그는 톤즈의 성직자이자 의사였고, 교사였고, 음악감독이었고, 주민들의 친구였다. 그는 2008년 말 휴가차 잠깐 한국에 입국했다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끝내 톤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러 가지 못하고 1년여 뒤 선종했다. 향년 47세.

영화 등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수도자와 선교사의 삶보다 봉사자로서의 면모가 부각되고, 그의 이름을 내세워 이런저런 모금 및 상업 활동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자 살레시오회는 2012년 관구장 명의의 공식 성명서를 냈다. 이태석 신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활동과 기념사업은 ”선교적 차원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며, “톤즈 및 남수단 상황과 사람들의 명예와 존엄을 손상하지 않아야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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