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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기억할 오늘] “적은 것은 따분하다(Less is B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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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첫 대표작으로 꼽히는 로버트 벤추리의 '바나 벤추리 하우스(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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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의 건축가’라 불러도 좋을 루이스 헨리 설리번(Louis Henry Sullivan, 1856~1924)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로 모더니즘 건축 미학의 뼈대를 세웠다. 이제 기능적으로 불필요한 모든 것, 장식과 상징 따위는 공간과 재화의 낭비이고 미학적으로도 후진 게 됐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거주를 위한 기계”라며 기능적ㆍ구조적 아름다움에 동조했고, 또 한 명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적은 것이 많은 것(Less Is More)”이란 말로, 대량 생산과 도시 팽창의 시대, 모더니즘 건축의 구호를 완성했다.

거장들의 저 도도한 흐름에 맨 처음 턱 들고 눈을 치켜뜬 이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y, 1925.6.25~2018.9.18)다. 그는 1966년 논문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Complexity and Contradiction)’을 통해 시대와 역사의 암시와 상징, 미적 장식, 유머도 없고 호기심도 자아내지 못하는 건축은 따분하다고 선언했다. “적은 것은 따분하다(Less Is Bore)”는 거였다. 그건 모더니즘 건축 미학에 대한 거부인 동시에, 아름다움에는 명료한 기준이 있고, 모범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는 발상 자체에 대한 거부였다. 그의 선언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구호가 됐다.

그는 형태를 기능에 가두는 걸 거부했고, 구조적 단순함 대신 복잡ㆍ복합적인 것을 추구했고, 단정한 대칭이 아닌 자유분방한 파격을 선호했다. 그에게는, 재료 본연의 아름다움과 기능적 편리만을 추구하는 디자인은 게으른 디자인이었다. 겉에서 봐서는 내부를 상상하기 힘든, 건축물인지 오브제인지조차 알 수 없는, 예컨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반모더니즘-탈모더니즘 건축이 그 계보에서 탄생했다. 물론 건축 소재와 구조공학의 진전이 그들의 미학을 가능케 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자신의 건축미학을 건축의 모든 형태와 규범과 개념을 해체한 ‘해체주의’라 정의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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